사라진 집 - 이 향 숙 - 담쟁이가 대문을 읽어내는 골목길 돌아 나오면 페인트 칠 비듬처럼 일어나는 쭈빗 거리는 담장으로 누군가 기다리고 누군가 서성거리다 돌아간 골목이었네 밤마다 모셔온 달빛으로 나무 그림자 어릉대는 벽화를 그려 넣고 담 바깥의 습기와 그 안쪽의 온기로 곰팡이 같이 만만치 않은 세월을 밀어 내보려 안간힘을 써 보는 집이었다네 달팽이관의 난청이 시든 꽃처럼 매달려 있는 낡은 신발장 먼지를 빼곡히 뒤집어 쓴 채 천년을 자도 눈꺼풀에 잠이 매달리던 그 방 수런수런 담 밖의 목소리가 동굴처럼 들리던 집속의 방 그 집이 쓰다듬고 품었다네, 핥으며 키웠다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네 날이 갈수록 약하고 노쇠해졌네 동네의 여섯 집 중 제일 끝까지 버뎥다네 터 잡고 산지 반세기만에 소방도로가 났다네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