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시인님 글방

병산서원, 겹치마 / 이향숙

덕 산 2021. 8. 28. 13:08

 

 

 

 

 

병산서원, 겹치마

                  - 이 향 숙 -

 

 

희고 먼 백사장에서 물수제비뜨는 일

두 번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푸른 절벽 단풍들이 기우뚱하니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데

강빛은 비껴 앉아 맞절을 받는다

 

만대루 기둥 마룻장 받치느라 제 몸뚱이 그대로

걸어 나와 주춧돌 위에 눈만 가리고 있다

부끄러운지 고요한데

덩그러니 매달린 북소리, 나른한 낮잠을 깨운다

 

복례문에 드나들 때 낮추지 못한다

키는 넘쳐나고 마음은 모자란다

배롱나무 꽃들이 뜰 한켠에서 붉다 못해

지쳐 가는 데

 

쏟아질 듯 쏟아질 듯 아슬한 마음 언저리

생목 올라오듯 하다

 

어느 누가 이리도 마음 한켠을 잡아당기는지

맞배지붕 겹처마에

아, 저 환장할 가을 빛

 

빛만 한창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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