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시인님 글방

화마 꽃 쿠테타 / 이향숙

덕 산 2021. 8. 25. 09:56

 

 

 

 

 

화마 꽃 쿠테타

              - 이 향 숙 -

 

 

소나무를 먼저 태운 불똥들이 휩쓸고 날아와

산을 집을 별장을 공장을 창고를 추사를

개와 닭을 자동차와 길을

곤충과 해충까지도 안녕, 하며

사람들의 집에 질린 눈동자를 날름, 하며

먹고 또 먹어도 허기져요, 하며

아낌없이 태웠다면 어떨까요

 

*조커의 치켜세워진 빨간 입처럼

그때 허공을 짚던 붉은 음표

고음과 저음의 파장을 곡선으로 나부끼던

길고 긴 불의 혀

밤새도록 노래를 그치지 않았죠

1시간에 5킬로 초속 35미터 도깨비불로

히히거리며 날아 다녔다죠

 

하늘 한켠이 시뻘겋게 환한 게

수십 킬로 떨어진 집 창문에서도 활활 보였어요

어둑해 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붉은 번짐

궁 궁 재난문자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마비된 도로는 돌처럼 굳어

차를 세워 두고 빠져 나온 사람들이

놀란 고라니처럼 허둥대기 시작했죠

 

주동자도 없는

붉은 쿠테타가 일어난 거죠

화마 꽃 쿠테타

 

끝날 기미도 없는

네로의 불타는 도시

영화를 많이 본 상상 증후군 이죠

 

티비는 밤새도록 국가 재난 선포

들뜬 아나운서 목소리만 댕댕댕

그때였어요

몇 년 동안 통 안부가 없던

사람들의 전화벨이

앞 다투어 울렸던 게

 

6.25도 겪어보지 못한 내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고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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