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꽃 쿠테타
- 이 향 숙 -
소나무를 먼저 태운 불똥들이 휩쓸고 날아와
산을 집을 별장을 공장을 창고를 추사를
개와 닭을 자동차와 길을
곤충과 해충까지도 안녕, 하며
사람들의 집에 질린 눈동자를 날름, 하며
먹고 또 먹어도 허기져요, 하며
아낌없이 태웠다면 어떨까요
*조커의 치켜세워진 빨간 입처럼
그때 허공을 짚던 붉은 음표
고음과 저음의 파장을 곡선으로 나부끼던
길고 긴 불의 혀
밤새도록 노래를 그치지 않았죠
1시간에 5킬로 초속 35미터 도깨비불로
히히거리며 날아 다녔다죠
하늘 한켠이 시뻘겋게 환한 게
수십 킬로 떨어진 집 창문에서도 활활 보였어요
어둑해 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붉은 번짐
궁 궁 재난문자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마비된 도로는 돌처럼 굳어
차를 세워 두고 빠져 나온 사람들이
놀란 고라니처럼 허둥대기 시작했죠
주동자도 없는
붉은 쿠테타가 일어난 거죠
화마 꽃 쿠테타
끝날 기미도 없는
네로의 불타는 도시
영화를 많이 본 상상 증후군 이죠
티비는 밤새도록 국가 재난 선포
들뜬 아나운서 목소리만 댕댕댕
그때였어요
몇 년 동안 통 안부가 없던
사람들의 전화벨이
앞 다투어 울렸던 게
6.25도 겪어보지 못한 내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고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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