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3944

신록 속에 서서 / 이은상

신록 속에 서서 / 이은상 흙탕물 쏟아져 내리던전쟁의 악몽과 화상여기선 신록조차 눈에 서툴러다른 나라의 풍경화 같네역사의배반자라는낙인찍힌 우리들이기에이 시간에도 온갖 죄악을아편처럼 씹으면서갈수록 비참한 살육의설계도를 그리면서거룩한신록의 계절을모독하는 무리들!그러나 우리들 가슴속에는마르지 않은 희망의 샘줄기어둠의 세기 복판을운하처럼 흐르고 있다기어이이 물줄기 타고 가리라통일과 평화의 저 언덕까지

좋은 글 2024.04.26

4월 / 오세영

4월 /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문득 내다보면4월이 거기 있어라.우르를 우르르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언제 먹구름 개었던가.문득 내다보면푸르게 빛나는 강물,4월은 거기 있어라.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열병의 뜨거운 입술이꽃잎으로 벙그는 4월.눈뜨면 문득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돌아보면 문득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좋은 글 2024.04.25

기울어진 4월이 아프다 / 오혜정

기울어진 4월이 아프다 / 오혜정 4월은 자꾸 왼쪽으로 기울었다수분기 없는 침묵이 수평선 아래로뿌리를 내린다나의 말들은 빛의 방향으로 자라나지 못하고점점 말라갔다봄은 정차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계절을 잃은 4월은 운율을 잃는다수분을 빼앗긴 기억들이, 템포 없이 멈춘 하루가바짝 시들어간다나의 봄은 안구건조증을 앓는다 아팠던 계절을 적는다상처 입은 풍경들이비로 내린다4월의 그늘을 적시는 이야기들기울어진 내 그림자의 왼쪽 다리가 저리다 피어나지 못한 우리의 문장들이계절의 길목에서 봄의 방향으로 구부러진다바람의 날갯짓이봄의 몸짓이었으면 한다 304송이의 꽃들이 노란 날개를 단다

좋은 글 2024.04.24

4월 엽서 / 정일근

4월 엽서 / 정일근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잎 사이 착하고 어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이 시편들을 날려 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까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 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 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좋은 글 2024.04.23

4월 / 위선환

4월 / 위선환 햇빛 내리는 소리가 자욱하네요 수풀 밑에까지 빛살이 내려와서 푸르고 밝아요 가지 마디마다 망울을 부풀리고 터트리는 어린싹들, 눈꺼풀에 쏟아지는 햇살이 부시어 고갯짓도 하네요 갓 핀 싹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속잎을 비벼대는지, 숨어 있는 작은 손들이 얼마나 많은 잎새를 피우는지요 내 내부의 마디마디에서 불꽃이 일어요 몸 안에 닿은 빛이 일순에 발광했어요 환하고 물밑이듯 조용하네요 내가 들어있던 어머니 몸 안이 이랬지요 눈도 귀도 잠겨 있었지만 물이 빠지는 소리 어머니 몸 열리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내 생명으로 들어오는 빛살이 보였어요 그래요. 빛살 푸른 거기쯤이면 어머님이 계실 듯 싶네요 갓 낳은 누이를 묻고 나서 바람소리만 듣던 어머니 작은 씨앗이거나 흰 풀꽃이거나 내 어릴 적 주린 허리를..

좋은 글 2024.04.22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잔잔함 음악이 흐르는 공간 잔 거품 오르는 생맥주가 앞에 있다 그리움 한 모금을 삼킨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며 가슴속 그리움을 물갈이하는 여인은 같은 시간 물을 차며 수영을 하듯 내 그리움을 가른다 별빛 같은 아파트 저녁 불빛 속에 사랑의 등대를 찾아 항로를 바꾼 여인은 자신만의 선착장에 그리움의 배를 대고 안식하고 싶어 한다 그곳엔 폭풍우도 세상을 가를 듯한 천둥번개도 없기를 간절한 기도로 소망한다 사랑의 동산에 4월의 향기 짙은 개나리꽃도 피어주고 다가올 7월의 뜨거운 햇살처럼

좋은 글 2024.04.21

4월의 노래 / 곽재구

4월의 노래 / 곽재구 4월이면 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첼로 음악을 듣는다 바람은 마음의 골짜기 골짜기를 들쑤시고 구름은 하늘의 큰 꽃잎 하나로 마음의 불을 가만히 덮어주네 노래하는 새여 너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내 사랑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다오 새로 돋은 나뭇잎마다 반짝이는 연둣빛 햇살처럼 찬란하고 서러운 그 노래를 불러다오

좋은 글 2024.04.20

할머니의 4월 / 전숙영

할머니의 4월 / 전숙영 시장 한 귀퉁이 변변한 돋보기 없이도 따스한 봄볕 할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땟물 든 전대 든든히 배를 감싸고 한 올 한 올 대바늘 지나간 자리마다 품이 넓어지는 스웨터 할머니의 웃음 옴실옴실 커져만 간다 함지박 속 산나물이 줄지 않아도 헝클어진 백발 귀밑이 간지러워도 여전히 볕이 있는 한 바람도 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흙 위에 누운 산나물 돌아앉아 소망이 되니 꿈을 쪼개 새 빛을 짜는 실타래 함지박엔 토실토실 보름달이 내려앉고 별무리로 살아난 눈망울 동구밖 길 밝혀준다

좋은 글 2024.04.19

봄이여, 4월이여 / 조병화

봄이여, 4월이여 / 조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 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라

좋은 글 2024.04.18

4월나무 / 최연창

4월나무 / 최연창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좋은 글 202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