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3951

4월 엽서 / 정일근

4월 엽서 / 정일근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잎 사이 착하고 어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이 시편들을 날려 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까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 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 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좋은 글 2024.04.23

4월 / 위선환

4월 / 위선환 햇빛 내리는 소리가 자욱하네요 수풀 밑에까지 빛살이 내려와서 푸르고 밝아요 가지 마디마다 망울을 부풀리고 터트리는 어린싹들, 눈꺼풀에 쏟아지는 햇살이 부시어 고갯짓도 하네요 갓 핀 싹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속잎을 비벼대는지, 숨어 있는 작은 손들이 얼마나 많은 잎새를 피우는지요 내 내부의 마디마디에서 불꽃이 일어요 몸 안에 닿은 빛이 일순에 발광했어요 환하고 물밑이듯 조용하네요 내가 들어있던 어머니 몸 안이 이랬지요 눈도 귀도 잠겨 있었지만 물이 빠지는 소리 어머니 몸 열리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내 생명으로 들어오는 빛살이 보였어요 그래요. 빛살 푸른 거기쯤이면 어머님이 계실 듯 싶네요 갓 낳은 누이를 묻고 나서 바람소리만 듣던 어머니 작은 씨앗이거나 흰 풀꽃이거나 내 어릴 적 주린 허리를..

좋은 글 2024.04.22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잔잔함 음악이 흐르는 공간 잔 거품 오르는 생맥주가 앞에 있다 그리움 한 모금을 삼킨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며 가슴속 그리움을 물갈이하는 여인은 같은 시간 물을 차며 수영을 하듯 내 그리움을 가른다 별빛 같은 아파트 저녁 불빛 속에 사랑의 등대를 찾아 항로를 바꾼 여인은 자신만의 선착장에 그리움의 배를 대고 안식하고 싶어 한다 그곳엔 폭풍우도 세상을 가를 듯한 천둥번개도 없기를 간절한 기도로 소망한다 사랑의 동산에 4월의 향기 짙은 개나리꽃도 피어주고 다가올 7월의 뜨거운 햇살처럼

좋은 글 2024.04.21

4월의 노래 / 곽재구

4월의 노래 / 곽재구 4월이면 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첼로 음악을 듣는다 바람은 마음의 골짜기 골짜기를 들쑤시고 구름은 하늘의 큰 꽃잎 하나로 마음의 불을 가만히 덮어주네 노래하는 새여 너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내 사랑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다오 새로 돋은 나뭇잎마다 반짝이는 연둣빛 햇살처럼 찬란하고 서러운 그 노래를 불러다오

좋은 글 2024.04.20

할머니의 4월 / 전숙영

할머니의 4월 / 전숙영 시장 한 귀퉁이 변변한 돋보기 없이도 따스한 봄볕 할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땟물 든 전대 든든히 배를 감싸고 한 올 한 올 대바늘 지나간 자리마다 품이 넓어지는 스웨터 할머니의 웃음 옴실옴실 커져만 간다 함지박 속 산나물이 줄지 않아도 헝클어진 백발 귀밑이 간지러워도 여전히 볕이 있는 한 바람도 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흙 위에 누운 산나물 돌아앉아 소망이 되니 꿈을 쪼개 새 빛을 짜는 실타래 함지박엔 토실토실 보름달이 내려앉고 별무리로 살아난 눈망울 동구밖 길 밝혀준다

좋은 글 2024.04.19

봄이여, 4월이여 / 조병화

봄이여, 4월이여 / 조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 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라

좋은 글 2024.04.18

4월나무 / 최연창

4월나무 / 최연창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좋은 글 2024.04.17

4월의 노래 / 노천명

4월의 노래 / 노천명 사월이 오면은,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 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픈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람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령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려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골이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좋은 글 2024.04.16

잎새라는 이름 / 허수경

잎새라는 이름 / 허수경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새가 있다면 아주 조금 먹고 길게 우는 새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바람이 있다면 그 바람 속에서 날려가는 우산은 가볍겠지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눈이 있다면 따뜻하고 보드라운 깃털일 거야 잎새라는 이름의 탱크가 있다면 잎새라는 이름의 테러리스트가 있다면 잎새라는 이름의 전쟁이 있다면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군인이 있다면 내가 기다리는 곳까지 와서 맑은 차를 마시다가 잠이 들 거야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잘 처려진 저녁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잘 저문 저녁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잘 여문 밤 별이 새처럼 지저귀는 언덕에서 잠드는 해도 잎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잠든 해 별의 먼지 아래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이 있다면 얼마나 순한 눈썹을 당신은 가지고 있을까 잎새라..

좋은 글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