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3951

4월 / 박인걸

4월 / 박인걸 사월이 오면 옛 생각에 어지럽다 . 성황당 뒷골에 진달래 얼굴 붉히면 연분홍 살구꽃은 앞산 고갯길을 밝히고 나물 캐는 처녀들 분홍치마 휘날리면 마을 숫총각들 가슴은 온종일 애가 끓고 두견새는 짝을 찾고 나비들 꽃잎에 노닐고 뭉게구름은 졸고 동심은 막연히 설레고 半白 긴 세월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 앞마당에 핀 진달래 그때처럼 붉다.

좋은 글 2024.03.31

벚꽃 지는 날에 / 김승동

벚꽃 지는 날에 / 김승동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 알 수 없는 눈물이 푸른 하늘에 글썽일 때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바람으로 벽을 세우는 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물결은 늘 내 알량한 의지의 바깥으로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서 세상 밖에서 살 때가 있다 그래도 기차표를 사듯 날마다 손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고 계산을 하고 살아가지만 오늘도 저 큰 세상 안에서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는 없다 누구를 향한 그리움마저도 떠나 텅 빈 오늘 짧은 속눈썹에 어리는 물기는 아마 저 벚나무 아래 쏟아지는 눈부시게 하얀 꽃잎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벚꽃들이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듯 하염없이 떨어진다. 정말이지 벚꽃이 떨어진다고 바람을 탓할 ..

좋은 글 2024.03.30

개나리꽃 / 도종환

개나리꽃 / 도종환 ​ 산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 잎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 깊은 산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 검은 물이 흐르는 하..

좋은 글 2024.03.29

어머니의 진달래 / 서문원 바오로

어머니의 진달래 / 서문원 바오로 바람 사나운 조석 연분홍 빛 홑적삼 조촐하게 차리시고 언젠가 오시려나 한번 맺은 인연 끝끝내 변치 않아 하루하루 지나가고 그 세월 셀 수 없어 검은 머리 희어져도 마음은 처음 그날 떨리는 첫 만남 콩닥거리는 숨결 기어이 가시던 날 겹겹이 뿌린 달래 분홍색 자국 물들더니 겨울 지나 어느 날 달래 돌연 내리며 그날처럼 온통 분홍빛 세월의 무상함에도 한결같은 진정지색 진 달래 곱게 여며 천상 모후 불러 오릅니다

좋은 글 2024.03.28

봄비 / 김수진

봄비 / 김수진 속삭이는 실바람에 소록소록 내리는 봄비 하늘과 땅을 잇는 고운 하모니로 마른 땅 촉촉이 적시고 보드라운 입맞춤으로 여린 새싹 일으키고 어루만진다. 메말랐던 빈 가지에 새순 트고 꽃을 피우는 연둣빛 포옹은 희망의 기지개로 봄의 향연 펼치네 생명을 주시는 은혜의 봄비 메마른 마음에도 촉촉이 내려 감사와 사랑의 씨앗 싹트고 나날이 곱게 자라면 좋겠다. 저 사랑의 빗소리! 방울방울 생명을 싣고 줄기줄기 빗살은 희열의 봄을 담은 연둣빛 생명의 신비 이 영광을 하느님께 높이 찬송하리.

좋은 글 2024.03.26

산수유 / 이병율

산수유 / 이병율 산수유 꽃잎의 사랑 산수유 노란 꽃잎의 향기 뿌려주는 가파른 숨소리 정겨운 그 산길에서 설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봄빛의 정겨움이 재잘거리는 그 입술에서 잃어버린 소녀를 보았고 소나무 등 기댄 입맞춤의 거리와 그리워 가슴 저려온 날들이 솟아나는 미완성의 열정을 잃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산 정상의 바위에 걸친 호수와 골짜기의 봄빛을 마시며 마주 본 가슴이 탐스럽게 두근거리며 맑아지는 영혼의 눈을 보았습니다 꽃잎의 손 만져 보고싶어 따스한 체온 가지고 싶어 설레는 가슴을 유혹 하지만 노란색 가련함이 달아날 것만 같아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 2024.03.25

목련꽃이 필 때면 / 솔새김남식

목련꽃이 필 때면 / 솔새김남식 창문을 열면 이웃집 담장안으로 하얀 목련이 소담스럽게 피어 오른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꽃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 하는 노래가 있다 목련 꽃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 사람이 그립다는 뜻이겠지 사랑해서 그립고 보고파서 그립고 그래서 봄비가 내리면 떠난 사람이 더욱 보고 싶어진다 목련 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아직도 꽃이 있는가 하고 며칠 후 창밖을 내다보면 그렇게 예쁘게 화사하게 피어있던 꽃은 거무칙칙해지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 둘씩 힘없이 떨어진다 그래서 꽃의 뒷모습은 개운치 않다 목련은 그렇게 빨리 왔다가 하룻밤 불타는 사랑도 엮지 못한 채 다른 꽃에 밀려서 떨어져 가는 게 아닐까한다 그래서 ..

좋은 글 2024.03.24

매화 / 문희숙

매화 / 문희숙 ​꽃피는 봄이 오면 포근한 남풍 두 볼 보듬고 섬진강가 매화꽃이 피어나겠지. ​ 샘솟듯 설레는 마음은 어머니 계신 고향집으로 오늘밤에도 꿈에 날개를 편다. ​ 추억을 곱게 담아 둔 빛바랜 앨범 속에 머무는 단발머리 친구 숙이 보고 싶다. ​ 위를 보니 따스한 봄볕이 겨우내 움추린 몸 감싸주고 코끝엔 풀 향기 맴 돌아 나른다. ​

좋은 글 2024.03.23

참회 / 정호승

참회 / 정호승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 한그루 심은 적 없으니 죽어 새가 되어도 나뭇가지에 앉아 쉴 수 없으리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에 물 한번 준 적 없으니 죽어 흙이 되어도 나무뿌리에 가닿아 잠들지 못하리 나 어쩌면 나무 한그루 심지 않고 늙은 죄가 너무 커 죽어도 죽지 못하리 산수유 붉은 열매 하나 쪼아 먹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에 한번 앉아보지 못하고 발 없는 새가 되어 이 세상 그 어디든 앉지 못하리

좋은 글 2024.03.22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리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좋은 글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