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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밤 / 윤동일

초여름 밤 / 윤동일 이것은 순전히 어렸을 적의 단순한 기억어둠이 소리없이 물결처럼 밀려오면돌담길 분꽃이제야 깨어나서꽃단장 하며함박웃음 짓는다 저기 저 수많은 별누가 오라 손짓하지 않아도저마다 자태를 뽐내며오작교를 놓았다 장독대의 봉선화오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손톱에 붉은 물 드리겠다는 신념오매불망 초여름 밤지나가고 없지만 모깃불 타는 냄새지금도 코속에서맴을 돈다

좋은 글 2025.06.11

바람 / 박인걸

바람 / 박인걸싸리 꽃 핀 산을 오르던 날한 줄기 바람이 이마를 스치며시원한 존재임을 각인시킬 때나는 바람에게 속지 않는다.굶은 창자의 비명을 들으며얼어붙은 대지를 걸을 때찢어진 겉 옷 사이로살을 찢던 바람을 나는 알고 있다.출처도 종착지도 모를이리저리 돌고 돌아맑은 눈에 모래를 뿌리고 떠나는바람에게 속지 않으리.눈이 시리도록 피어 올린능소화 꽃송이를 내동댕이치고천년 백송의 허리를 사정없이 꺾던 날나는 바람의 난폭함을 보았다.두 얼굴의 표리와철면피의 가증함을 감추고꽃향기 물고와 살며시 유혹하는바람아 나는 너의 정체를 안다.

좋은 글 2025.06.10

여름 일기 / 이해인

여름 일기 / 이해인 여름엔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나를 빨아 널고 싶다여름엔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뜨겁게 살고 싶다여름엔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바다에 가서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좋은 글 2025.06.08

초여름 풍경 / 정연복

초여름 풍경 / 정연복 날이 덥다.보이지 않는 새들이 나무 위에서 지저귄다.​새들의 울음 소리에 나뭇잎 들이 시든다.더운 날 나무에 게는 잦은 새소리가 불안처럼 느껴진다 익어가는 토마토마다 빨갛게 독기가 차 오르고 철길을 기어 가는 전철의 터진 내장에서 질질질 질긴 기름이 떨어진다 약속에 늦은 한낮이 헐레벌떡 달려온 아파트 화단에기다리는 손에 들린 풍선이 터진다​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좋은 글 2025.06.07

6월의 느낌 / 박인걸

6월의 느낌 / 박인걸조용히 쏟아지는 금빛 햇살은주님의 섬세한 손길이며살랑이며 스치는 연한 바람은주님의 맑은 숨결입니다.끝없는 하늘을 우러러주님의 무한하심을 깨달을 때의미 없이 바라보던 산들이오늘은 주님 품으로 다가옵니다.넝쿨 장미 눈부신 꽃잎에주님 보혈의 사랑이 가득하고초록 빛 나뭇잎들마다성령의 생기가 충만합니다.가슴속으로 밀려드는하늘로부터 내려온 평화가영혼에 맴돌던 두려움을깨끗이 걷어내고 있습니다.

좋은 글 2025.06.06

6월의 장미 / 오선 이민숙

6월의 장미 / 오선 이민숙 6월이 오면민족의 한 서린 핏빛 함성은거친 숨을 휘몰아치며푸른 고지로 향해 돌격할 때 지친 산마루 찢긴 살점 사이로적군의 깃발이 솟아오르면남은 핏빛을 끌어모아북으로 남으로 뻗어 갔을 6윌의 장미여! 땅이 휘어지고하늘이 무너지는 6월에는님의 넋을 기리는아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 어느 산야 가시덤불 속에 뒹굴던주인 잃은 철모는이름 없는 병사가 각혈을 토해비목의 숲에 잠들었을 뜨거운 날눈시울 붉은 장미도 울어버린 날입니다 온 산하를 뒤덮어 메아리치던 그날호국 영령 이름이 새겨진 현충원에 비석은그날을 잊지 마라 외치네요 붉다 못해 검붉은 6월의 장미여!송이송이 조국에 바친 혼이여!오천만의 가슴에 눈물꽃으로 맺힌핏빛 장미를 끝끝내 잊지 말아요

좋은 글 2025.06.05

유월에는 사랑을 하자 / 이도연

유월에는 사랑을 하자 / 이도연 삶이란소중한 것들이 가까이 있을 때 알지 못하고떠나간 뒤에 알게 된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꽃 피었을 때 알지 못하고꽃이 질 때 아쉬워서 슬퍼한답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후회와 동의어로지금 이 순간소중한 존재를 잊고 살아간 것에 대한 형벌입니다 그립다 그리워하니 더욱 그리워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때가장 행복한 것을 알지 못하는 우매함입니다 절반의 시간이 가고 절반의 시간을 향해속절없는 강물은 흐르고 있습니다 유월에는일월의 그리움이나 십이월에 후회라는 단어는 접어 버리고 내 소중한 것들의 시간을 놓치지 말고애정의 눈길로 입맞춤해야 하는 것은 떠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기에오늘을 사랑하고지금 내 곁에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글 2025.06.04

6월의 장미 / 이해인

6월의 장미 /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땅은 향기롭고마음은 뜨겁다6월의 장미가말을 걸어옵니다 사소한 일로우울할 적마다'밝아져라''맑아져라'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가장 가까운 이들이사랑의 이름으로무심히 찌르는 가시를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6월이 넝쿨장미들이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내내 행복하소서.

좋은 글 2025.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