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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를 치다 / 이영식

매화를 치다 / 이영식​노인정 뒤뜰 매화나무꽃 피우고 열매를 꺼내 보이는 일이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네할머니 할아버지들화투 치며 내다보고 장기 두다 건너보며눈도 털지 않은 매화나무에 눈도장 찍으시네겨우내 잠자던 꽃망울 불러내어매화를 치네 꽃이 피었다 진 뒤에도마음은 종일 나무 그늘을 서성거리네손자 녀석 불알 쓰다듬듯 매실을 키우시네노인정 선반 위 유리병 안에서파릇파릇봄날의 기억들이 매실주로 익기도 전에한 노인이 매화나무 뿌리 속으로 기어들어가셨네아무도 울지 않았네바람 불고 낙엽 지고 또 눈 내리는 날에도난초 단풍 뒤집고 바둑 장기를 두었네이별을 이야기하지 않았네 새봄, 겨우내 얼려두었던 눈물을 펼치네잔설이 성성한 화폭 위에다시 매화를 치네

좋은 글 06:09:47

풍매화 / 하종오

풍매화 / 하종오​떠돈들 어떠리 떨어진들 어떠리언제든지 떨어지면 움 돋겠지진달래가 골백 송이 흐득흐득 울어도풍매화는 바람 따라 날아다닌다골짝에 죽어 있는 메아리를 살려내고벌목꾼이 버리고 간 도끼소리 찾아내고땅꾼이 잃어버린 휘파람도 찾아내어그 덧없는 소리들 데불고 무얼 하는지풍매화는 이곳저곳 기웃거린다혼자서 싹틀 힘도 없으면서어디든지 뿌리내리면 숲이 이뤄지겠지풍매화는 득의양양 산맥을 날아다니지만대포알 묻힌 땅 버릴 수 없고녹슨 철조망 무심히 바라볼 수만 없어머뭇거리니 마침내 바람도 잠잠해진다이제는 묻혀야지, 몸 바쳐야 할 자리는 여기

좋은 글 2025.04.16

동백을 보며 3 / 임현호

동백을 보며 3 / 임현호 어느덧 겨울은 가고꽃피고 새우는 봄이 왔을 때아무런 미련도 없이4월을 맞이하였으니푸른 이파리어둠의 그늘도 몰아내고말없이 내민 움새싹은 우리의 만남처럼인연의 세상을 꾸몄다 그 옛날 어머니 머릿기름으로윤이나는 가르마지금도 눈에 선한데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어머니의 잔상동백은 그렇게 각인된 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좋은 글 2025.04.15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 용혜원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 용혜원 내 마음을 통째로그리움에 빠뜨려 버리는궂은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습니다 . 굵은 빗방울이창을 두드리고 부딪치니외로워지는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면그리움마저 애잔하게빗물과 함께 흘러내려나만 홀로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 쏟아지는 빗줄기로모든 것들이 젖고 있는데내 마음의 샛길은 메말라 젖어들지 못합니다 . 그리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눈물이 흐르는 걸 보면내가 그대를 무척 사랑하는가 봅니다 .우리 함께 즐거웠던 순간들이더 생각이 납니다 .  그대가 불쑥 찾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보고 싶습니다 .

좋은 글 2025.04.13

목련 / 권경희

목련 / 권경희 촉촉이 내린 봄비로동면한 잠에서 깨어나희열의 솟구침으로까슬한 솜털을 벗어 하얀 목덜미를 내민다 따사로운 햇살에마른 가지마다 화사하게 꽃등을 달고걸음걸음 청빈한 백로처럼고고한 자태는 눈이 부시다 속살거리는 아지랑이에자꾸만 부풀어지는 짙은 그리움에닿지 못하는 애증의 날들이내 하얀 날개를 접는다 가슴이 뜨거울 때떠날 때를 아는 분분한 낙하는그립다는 말보다더 절절한 고백이다

좋은 글 2025.04.12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게더욱 깊은땅 속 어둠 뿌리에서줄기와 가지꽃잎에 이르기까지먼 길을 걸어 온어여쁜 봄이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죽어가는 이가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희디흰 봄햇살도꽃잎 속에 잡혀 있네 해마다첫사랑의 애틋함으로제일 먼저 매화 끝에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이별의 슬픔도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꽃나무 앞에 서면갈 곳 없는 바람도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그래, 알고 있어편하게만 살순 없지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좋은 글 2025.04.10

동백 / 매향 도현영

동백 / 매향 도현영  봉오리 진 가슴도활짝 핀 열정도 때가 되니 무너지고 아리더라 그 눈빛그 그리움도뿌옇게 흐려지고 또 다른 빛도 빛나더라 그 느낌그 그림자를 추억하자니엄동에 가슴만 시리고 후회가 남더라 동살도 모르게이쁜 사랑이 날 바라보고 있을까만붉게 타다가 떨어질 가슴들.. 말 못 할수많은 사랑아내로남불도 인생이요 사랑일까?

좋은 글 2025.04.09

제비꽃 편지 / 안도현

제비꽃 편지 / 안도현  제비꽃이 하도 예쁘게 피었기에화분에 담아 한번 키워보려고 했지요뿌리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삽으로 떠다가물도 듬뿍 주고 창틀에 놓았지요그 가는 허리로 버티기 힘들었을까요세상이 무거워서요한 시간이 못 되어 시드는 것이었지요나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지만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없었어요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그래서좋다시들어라, 하고 그대로 두었지요

좋은 글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