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 김향숙 국숫집 마당에 젖은 국수가락이하얀 기저귀처럼 흔들린다 햇볕이 나면 보송보송 말려시장 골목 구멍가게로 배달한다국수 값 몇 푼으로 유지하는 가족의 생계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국수가락이 젖는 날에는아버지의 가슴에도 장대비가 내렸다한숨으로 허기를 달래고마르지 않는 궁핍으로 앞치마를 동여맸다 장마가 지면 근심도 길어져밀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국수를 뽑던 가장의 빈자리에고단했던 시간들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국수가 길어지던 날 빗물에 풀려 버린 끈주인 없는 앞치마가빈 벽에 걸려 비바람에 날리고 있다 하늘에서 가늘고 긴 소면이 내리는 날물의 가락을 뒷산이 후루룩 말아먹는다장마 때마다 국수를 드시는 아버지산소 앞에 식구들을 불러놓고잔치국수를 대접한다 국수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햇살이널린 국수 가락 사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