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려있다, 바늘꽃
- 이 향 숙 -
툭하며 줄기 몇 대가 끊어지고
곷대가 맥없이 스러졌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밥풀떼기 같은 꽃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분홍 꽃들이
마냥 위안이었는데
지난 밤 통째로 빠져나온
비바람이 서릿발로 꽂혔다
머리 풀어 헤치고 속으로 울고 있는지
오른편으로 쏠려 휘어진 더미
모양새 잡아 준다고 감아쥐고
왼편으로 모두 돌렸다
며칠 째 받지 않는 전화
오른쪽으로 가 있는 마음을 왼쪽으로 돌리라 했다
손대지 말아야 할 마음결에 잔금이 갔다
꽃 더미도 바람에 마구 쏠려 가는데
도무지 어디로 갈지 몰라
잠시 흔들리는 네 애잔함 미처 읽어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
명랑하고 봉긋한 구름송이 같은 여린 그 마음
채 덜 익은 마음 줄기 몇 마디가
끊어지고 부서진 거다
아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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