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시인님 글방

담쟁이와 고양이 / 이향숙

덕 산 2021. 9. 30. 16:54

 

 

 

 

 

담쟁이와 고양이

                - 이 향 숙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라고 하길래

사는 게 왜 다 그래야 해 하고 되묻다가

나는 담쟁이처럼 기를 쓰고 벽을 넘느라 마침내

붉어지고 나는 철 못 드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둥글게

말고 낭창하게 본다

꼭 앞으로만 가야 길이 아니야

옆도 보고 뒤도 봐야 피는 꽃 지는 꽃 시든 꽃

아픈 꽃 다 보이지

꽃피다 지고 잎 피다 다시 진 마디로

그늘이 자꾸 길어지는 만큼

나를 빌리고 너를 깊숙이 빌려 쓴 것

철지난 마른 빈 가지에

다시 눈송이 소복 쌓여 하얀 꽃 뭉글 피어나면

사는 건 이런 거구나 그 때야 말 할런지도

 

퍼붓다 스러질 눈이 한 시절 애증처럼

못내 엉겨 붙어

추운 뿌리 갈래갈래 적시며

가난한 몸

서로 내어주며 함께 흘렀다는 걸

 

 

 

 

반응형

'이향숙 시인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쏠려있다, 바늘꽃 / 이향숙  (0) 2021.10.07
기사문항 / 이향숙  (0) 2021.10.01
등이 굽는 꽃 / 이향숙  (0) 2021.09.26
농담 / 이향숙  (0) 2021.09.25
사라진 집 / 이향숙  (0) 2021.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