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가을 걷이...

덕 산 2012. 7. 2. 16:51

 

 

 

 

 

어제 광교산 산행 길....

수변도로 지나 버스종점으로 향하는데....

농부 한분이 낫으로 벼를 베는 게 보인다.

콤바인이 작업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논 입구의 벼를 베고 있다.


오랫만에 낫질하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몇 십년 전 가족이 모여

함께 벼를 베던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다.


망서림 없이 농부에게 다가가서

사진 좀 찍겠다고 말하자

“시골출신이지요? 고향이 어디요?”라고 말한다.

“예 고향은 충청도구요. 어릴적 생각에....”

순박한 웃음지으며 농부는 벼를 베며 포즈를 취해준다.

 

여러 자식을 둔 부모님은 이맘때쯤이면

벼베기, 밭걷이 등.... 등이 휘도록 일을 하셨다.

자식들이 농사일에 많은 도움을 드리진 못해도

고사리 같은 손이 모여 조금이나마 도와드렸다.


객지에서 공부하는 아들에서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까지....

농사지은 수입으로 항상 부족한 살림살이....

몇 년에 한차례 씩 농토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내가 어릴적엔 한 골짜기가 우리집 농토였으나,

윗 형제가 하나 둘 대학을 마칠 무렵에는

이미 많은 농토가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소유했던 농경지가 남의 손에 넘어가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 어린 나도 애석한데...

부모님 마음은 아마 찢어지는 심정이셨으리라 생각된다.

 

 

부모님께서 농토가 줄어드는데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은

여러 남매 대부분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많은 농토가 줄어들어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수확한 곡물들은 학비문제로 사채를 조달한 비용을 값기 위해

가을걷이 끝나기 무섭게 시장에 내다 팔았다.

너도나도 수확한 곡물이 시장에 나오니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래도 농촌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것은 곳물뿐이니...

알면서 헐값에 매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곡간은 비어있고 아버지께선 텅빈 곡간을 한숨으로 채웠으리라 믿어진다.


무척 애주하셨는데... 주막에서 막걸리 구입 할 돈이 없어

어머니께선 밀주를 담아 아버지께 드렸다.

이렇다 할 안주도 없이 김치쪽이나 마늘에 고추장이 전부였다.


그렇게 부모님 허리가 휘도록 피 땀 흘려 키운 자식들은

모두 제 삶을 꾸리느라 바쁘고....

남아있는 토지는 천수답 다랭이 논 몇 마지기가 전부였다. 


아버지께선 젊은 시절 직장생활하시면서

일본, 동남아시아, 소련 등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외국을 다녀오셔서 그런지...

농토의 보존보다는 자식을 가르치시고자 하시는 열정이 남다르셨다.


지금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을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해드릴 것 같은데.... 마음만 간절하다.

이젠 내가 아버지가 되어 자식의 짐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벼 베는 농부를 보면서...

5시간의 산행 중 단풍 같은 어릴적 추억이 떠올라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 2010.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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