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다와 여위다
- 이 향 숙 -
샤스타데이지가 뒤란에
가득 피어나
속절없는 바람에
하얀 별처럼 마구 흔들리는데
두 장의 목숨을 한 겹으로 떠나보낸 심정은
하룻밤 꽃 진 자리처럼 덧없다고
미안하다
따뜻한 온돌방처럼
데워주지 못해서
꼭 안아 주지 못해서
채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방
그 방에 들어 가 볼 용기가 없어서
아픈 데를 혼자 핥게 내버려 두는 것
진작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 해보는 것
감감해진 들로 나가 흙을 파내고 또 뒤집고
굵은 비를 채칙처럼 받아내고 또 받아내며
유령처럼 서 있다
아프구나
쓰다듬어 주지 못해서
다독이며 읽어주지 못해서
배수로가 없는 빈 밭고랑에
빗물처럼 스며들어 누수처럼 번지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엉겨 붙는 진흙처럼
가슴속에 하나씩 묻고 사는
눈물 가득한 그것,
뒤란에 데이지 꽃들이
철모르는 바람에 서로 몸을 부벼대며
흰 손가락으로 여위어 가는 길
애써
실눈 뜨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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