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시인님 글방

여의다와 여위다 / 이향숙

덕 산 2021. 10. 21. 13:19

 

 

 

 

 

여의다와 여위다

                 - 이 향 숙 -

 

 

샤스타데이지가 뒤란에

가득 피어나

속절없는 바람에

하얀 별처럼 마구 흔들리는데

 

두 장의 목숨을 한 겹으로 떠나보낸 심정은

하룻밤 꽃 진 자리처럼 덧없다고

 

미안하다

따뜻한 온돌방처럼

데워주지 못해서

꼭 안아 주지 못해서

 

채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방

그 방에 들어 가 볼 용기가 없어서

아픈 데를 혼자 핥게 내버려 두는 것

 

진작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 해보는 것

 

감감해진 들로 나가 흙을 파내고 또 뒤집고

굵은 비를 채칙처럼 받아내고 또 받아내며

유령처럼 서 있다

 

아프구나

쓰다듬어 주지 못해서

다독이며 읽어주지 못해서

 

배수로가 없는 빈 밭고랑에

빗물처럼 스며들어 누수처럼 번지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엉겨 붙는 진흙처럼

 

가슴속에 하나씩 묻고 사는

눈물 가득한 그것,

 

뒤란에 데이지 꽃들이

철모르는 바람에 서로 몸을 부벼대며

흰 손가락으로 여위어 가는 길

 

애써

실눈 뜨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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