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550

공허한 침묵 / 淸草배창호

공허한 침묵 / 淸草배창호 망막한 행간을 더듬다 신열을 앓아 고단한 잣대의 딱 그만큼 크기만 한 비율의 회오리 눈으로 부상한 8월, 시한 술, 행여 건질 수 있을까 싶어 기우뚱거려도 가슴과 머리가 따로 놀아 난해한 시류時流의 멍에에 이명을 앓고 있다 모난 말들은 정화의 터를 잡기까지 단선의 화통 열차처럼 회색빛 일색이고 분별조차 이분법의 쳇바퀴에 길든 한통속, 한여름 햇살에 잘 달구어진 구릿빛으로 아람일 듯 여문 조합의 잉태는 아직도 감감하니 빛바랜 세월만 너절하게 깔려있어 이 아니 슬프다 하지 않으리

가을 소곡(推敲) / 淸草배창호

가을 소곡(推敲) / 淸草배창호 해맑은 하늘이 그윽한 청자를 빚었다 고추잠자리 스산한 해거름인데도 구애가 한창 시시덕 휘지르지만 잠깐 머물다 갈 시절 인연 앞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몰랐다 빼어난 곡선은 아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그렇고 휘영청 별 무리가 외등처럼 걸려 있는 메밀밭 소금꽃이 그렇다 곰삭은 한때도 사위어 가는 데 어쩌랴 호젓한 네, 애써 바라다 꽃대궁으로 남아 서릿바람이 이내 거두어 갈지라도 달그림자 서린 댓 닢 소리만큼이나 깊은 그리움, 딱, 이만 치면 욕심이 아닌데도 들불처럼 혼신을 불어넣는 사색의 베갯머리에 뉘어 텅 빈 무심만 훠이훠이! 가을 앓이에 서늘한 그리움만 귀로에 든다

귀엣소리 / 淸草배창호

귀엣소리 / 淸草배창호 딱 그만치이더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기별도 없이 맞이한 이별의 예감이 산허리를 감고 있는 안개구름처럼 외로움이 지나간 자리마다 찔레꽃 향기 남실대는 산기슭 같아서 그렇게 땅거미 지듯 스며들 때까지 아련히 이슬 머금은 눈가에 재만 남은 숯검정 가슴은 차마, 안녕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지요 이미 기억에서 멀어진 지난 옛이야기지만 사시나무 떨었든 엄동을 뒤안길로 몰아붙인 보란 듯이 툭툭 불거진 꽃망울을 닮은 봄이 실금 같이 파동치는 엊그제만 같았는데 토혈을 쏟고 굴러가는 동백의 자지러지는 안부에 가슴 한켠이 문드러지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요? 하늘 아래 머무는 품을 수 없는 바다가 되었어도 봄비가 오는가 싶더니 천둥이 울어대는 장맛비가 지나가고 가랑비 내리는 가을이 오기까지 때 ..

백날의 염원을 피웁니다 / 淸草배창호

백날의 염원을 피웁니다 / 淸草배창호 신열을 앓고 있는 그렁한 눈망울로 밀물져 꽃을 지고 온 시절을 넘나든 바람이 들불처럼 번지듯이 지천을 흔들어 두런두런 붉게 타는 해거름 노을 소리 염천에도 필연의 까닭으로 다가온 한철의 네, 애끓음조차 곱디고와서 울먹울먹 뛰고 있는 고동 소리 눈길 닿는 곳마다 초승달 같은 미소는 바라만 봐도 괜시리 눈시울 붉히게 합니다 짙어진 초록이 무색하리만큼 천지도 분간 못 할 그리움 마구 쏟아내는 오롯한 귀티조차 차마 어쩌지 못해 초하에서 찬 이슬 내릴 때까지 피고 지기를 백날의 해후를 낳고 있습니다 네, 담담히 연리지를 꿈꾸기까지 애절한 번민에서 단호한 결별이라 여겼건만 밤 쏘낙 빗소리가 아리고 헛 몸의 까닭 모를 그림자가 되었을지라도 생에 네, 빈자리를 꽃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강가에 매어 둔 그리움 / 淸草배창호

강가에 매어 둔 그리움 / 淸草배창호 수런수런 강물 소리 외롭다고 하마 닿을 수 없는 까닭에 해 질 녘 일과라도 치를 듯 실금처럼 지난 사랑이 오롯이 파동치는 강가에 매어 둔 그 언약도 잊지 않겠노라는 그리움이듯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외로움이 지문처럼 드리웠다가 허랑허랑 동백이 툭툭 떨어지듯 이내 기약 없는 안녕이 되었습니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독백이런가 묵은 안부를 묻고, 속엣말을 터놓을 수 있는 것조차 까마득히 묻히기만을 기다렸는데 한겨울 차디찬 눈발처럼 다가온 사그라지지 않는 번민이 될 줄이야 잔잔한 물비늘 같은 희미한 세월 앞에 먼 저편의 닻을 내린 포구浦口일 뿐이기에 생멸生滅의 아득한 끝에서 밀어낼 수 없어 대롱대는 가슴앓이입니다

고혹한 네, 있음에 / 淸草배창호

고혹한 네, 있음에 / 淸草배창호 하루도 힘겨운데 치성의 마음 아니고서야 셀 수 없는 염천의 들끓는 욕망으로 펼쳐진 환부의 시련을 얼마나 견뎌야 할까 이제 막 언약한 백날의 다짐은 고집스런 땡볕을 흔들어 댈 더할 수 없는 초혼 같은 환희입니다 티 내지 않고서도 분홍빛 꽃전을 지천에 놓고 있는 네, 그윽한 울림이 화촉을 밝혀 열흘이면 지고 말 편견을 내쳤으니 아무렴, 누가 감히 견줄 수 있으리 꽃 속에 깊은 망막의 바닷속으로 시름겨운 지친 눈길 닿는 곳마다 피고 지기를 노을처럼 일고 있는데 더위마저 잊은 체 지난날 그리움을 향한 닳도록 지문이 되어버린 독백인지 모르겠습니다 배롱나무 꽃말은: 부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배롱나무(목백일홍)는 7월에서~9월 초가을까지 핀다.

뇌성벽력 / 淸草배창호

뇌성벽력 / 淸草배창호 한여름 땡볕을 흔들어 대는 먹구름 가늠할 수 없는 이상기류인 줄만 알았는데 저마다의 몫이 있고 감당할 무게가 있건만 수평을 벗어난 기울어진 저울 눈금처럼 폭주하는 장맛비, 숨 가쁘게 파동을 친다 운치를 자아내든 옛적, 토담집 낙숫물 소리마저도 하루는 좋아도 이틀이면 지겨웠는데 벌거숭이 뭔들 못할까마는 바람도 따라갈 수 없는 세상에 뇌성벽력이 놓는 숨 가쁜 일침이다 탓으로만의 오독 뒤에 구름을 포갠 토사의 탁류가 빚은 상흔이건만 비바람이 맞닥뜨린 뒤꼍에 속물의 근성이 만연한 관습에 경고인지, 빗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산나리를 보라! 회귀한 물길이 그저 통속의 바다이기를

백날의 꽃을 피웁니다(推敲) / 淸草배창호

백날의 꽃을 피웁니다(推敲) / 淸草배창호 신열을 앓고 있는 그렁한 눈망울로 꽃을 지고 온 시절을 넘나든 바람이 들불처럼 타올라 지천을 흔들어대도 동공에 빗금을 마구 그어 놓았으니 내 안에 엉킨 애증의 뿌리, 염천에도 단아한 환영처럼 일렁이는 아련한 미소는 네, 애끓음을 닮아서 울먹울먹 뛰고 있는 박동 소리 눈길 닿는 곳마다 바라만 봐도 괜시리 눈시울이 떨립니다 풀물이 무색하리만큼 타오르는 애환을 차마 어쩌지 못하는 초야의 그리움은 치성의 마음으로 피고 지기를 백날이란다 네, 오늘처럼 잎새가 기다리다 반란을 꿈꾸기까지 애절한 더 많은 고통으로 인해 밤 쏘낙 빗물 소리조차 아려도 품어야 할 필연이기에 담담히 하시라도 예지토록 피울 것입니다

천둥의 장맛비 / 淸草배창호

천둥의 장맛비 / 淸草배창호 달무리가 뜨고 흐리마리한 밤하늘 연례행사처럼 장맛비 하루가 멀다고 천둥이 우짖고 이내 산허리조차 베어먹는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 문물의 한계를 초월한 천체를 누비는 유토피아 이래도, 자연 앞에 선 사이 間을 탓할 수 없는 한낱, 형상일 뿐 시공時空이 무색하리만큼 드러나지 않은 혼돈이라는 파열음의 동요를 즐기는지 모르겠다 곳에 따라 線을 긋는 함몰의 잣대가 파양이 아닌 부디 바다 같은 통속이기를, 짙디짙은 네 농염의 오만한 폭주로 피상皮相의 난장을 아낌없이 펼쳤으니 천변의 방둑을 노리는 폭우가 휩쓸고 간 상흔의 뒤끝에도 비록 덤이 없어도 오늘이 솟는다 갈꽃의 생애는 억척을 그대로 빼닮았기에

천둥벌거숭이 / 淸草배창호

천둥벌거숭이 / 淸草배창호 이 한 철, 한여름의 고집스런 땡볕은 시나브로 가 통하지 않는가 보다 연례행사처럼 뭉그적대는 줄만 알았는데 여름비도 예외가 아닌 이내 천둥벌거숭이, 천지도 분간 못 할 폭우가 퍼붓고 삽시간에 봇물이 터져 도량을 삼킨다 헐떡이는 산하, 미로 숲의 안개처럼 장대비에 토사를 뒤집어쓴 개천이 거역할 수 없이 마구 속물을 토하고 있으니 사흘이 멀다고 허걱이는 파동을 어쩌랴 차마 꺾을 수 없는 갈등을 부추기는 틈새마다 얼룩진 잔재가 멍울처럼 긴장을 부풀리건만 콸콸-콸콸- 차고 넘치는 줄도 모르고 밤낮도 잊은 거칠고 막가는 시류時流의 단면이지만, 산자락에 핀 원추리꽃 저버리지 아니한 홀로 고상한 운율에 단원의 막을 내리듯 밤새 앓음조차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