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549

그 겨울에 / 淸草배창호

그 겨울에 / 淸草배창호 밤새 훑이고 간 벼린 발톱에 서릿발로 겨워 낸 하얗게 피운 꽃 긴긴 동지섣달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소한小寒 집에 마실 간 대한大寒이 얼어 죽었다는 생뚱맞은 소리까지, 엇박자 속에 이미 계절의 감각을 져버린 가고 옴의 절묘한 조화는 뒷전이라서 애틋하게 끝난 것도 없고 설레게 시작한 것도 없이 모나지 않게 조약돌처럼 둥글어지라 한다지만 먹물을 뒤집어쓴 겨울이 연신 신열을 앓아 아리고 매운 북풍으로 아무 때나 몰아치고 야단으로, 날로 법석거리며 내린 뿌리는 홀로 견뎌야 했을 기울어진 세파에 늘, 한쪽 발이 시렸는지 모르겠다 푸석푸석한 어둠의 정적만 쫓지 말고 시린 밤이 얼고 녹기를 기다리지 말고 소복한 눈송이에 묻히고 싶은 땅에 닿지 않은 봄을 기다리듯 툇마루에 앉아 내리쬘 한 줌 ..

해인海印의 설원雪原 / 淸草배창호

해인海印의 설원雪原 / 淸草배창호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짊어진 청빈한 고송古松의 가지마다 은쟁반 빛살의 고분을 피웠으니 바윗고을 홍류紅流 계곡에도 소복소복 하얀 젖무덤이 장관이더라 세속을 초월한 정절을 보란 듯이 눈풍애 사방을 휘몰아쳐 천 년의 긴 잠에 빠진 해인海印의 설원을 보니 차마 범접할 수 없는 고찰古刹의 예스러운 풍취가 저리도 고울까, 어쩌지도 못한 삶이 끝없는 고해라서 일탈하는, 소리 바람이 인다 영겁永劫을 두고도 못다 한 ​고적한 겨울 동안거冬安居, 빈 가슴에 화두話頭만 눈부시게 사각이는구나!

창窓이 연鳶이라면 / 淸草배창호

창窓이 연鳶이라면 / 淸草배창호 산등성을 휘감은 달무리가 하루가 멀다고 바람 잘 날 없는 풍자諷刺는 장르를 불문하고 침묵에 잘 길들어진 양면의 두 얼굴이 백야白夜의 술시戌時에 자빠졌다 이숖의 이야기처럼 솥뚜껑으로 가린 타고난 재주 하나, 새롭게 이정표로 자리 잡았는가 하면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안개 무리 공허한 양치기만 난무한다 빗금을 긋듯이 여차여차 살얼음 수위는 편린片鱗의 기억들이 밀물처럼 번지듯이 주어 없이 남실대는 개골창에는 난장을 이루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비록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사시나무 층층으로 흔들어 대듯이 각들이 종횡무진 마중물이라 하니 방패가 된 창은, 한낱 문종이려니 하면서도 허공의 나락那落으로 부딪치는 배척이 날개 없는 솔개 연鳶이 정점이다

동박새와 동백冬柏 / 淸草배창호

동박새와 동백冬柏 / 淸草배창호 밤이 길어 꿈도 길다는 동짓달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큼이나 홀로 견뎌야 했을 고적孤寂한 밤을 밀어내듯이 아스라이 펼쳐진 젖빛 해무海霧에 엉킨 달마저 희붐한 창가에 걸렸다 진눈깨비 휘 내리는 잔상의 끝 달에 동백꽃 만발한 향기로운 서정이 깃든 남쪽 섬에 흔한 텃새지만 붉도록 꽃술에서 미혹에 들게 하는 달달한 꽃물을 어이 마다할까, 본디를 이루는 베풂의 미학인 것을 시린 바닷바람도 늘 익숙한 일이라서 송이채 툭툭, 하늘을 향해 맑고 빼어난 토혈을 쏟고 있는 놓고 가는 결 고운 빛살만큼이나 눈가에 두룬 흰 테처럼 이쁜 꽃받이로 동숙하는 동박새, 군무群舞에 해지는 줄 모른다

상고대 / 淸草배창호

상고대 / 淸草배창호 진눈깨비 얽히고설킨 엄동嚴冬의 밤을 희붐한 창가에 걸린 달마저 동짓달의 긴긴밤을 마구 헤집다 깨고 나면 허탈한 게 꿈이라지만 거죽만 남긴 적멸寂滅의 새벽녘, 산거山居에는 골바람이 옹골차게 일고 있는데 애증愛憎으로 가물가물한 불씨마저 울림 없는 통속이 회한으로 남아 한 때, 뜨겁게 달구었던 욕망의 분신마저 영하로 꽁꽁 얼어붙게 하였다 야속하게도 설은 건 기억에서 멀어져간 휑하도록 허전한 속 뜰까지 애써 다독이지 못해 헤아릴 수 없는 상념의 똬리를 튼 문풍지는 밤새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동이 트면 이내 사라질지라도 눈부시게 피어있는 서리꽃처럼 겨울을 사랑한다는 건, 속엣말을 터놓을 수 있는 시리도록 바라볼 수 있는 네, 상고대처럼!

변방의 사색 / 淸草배창호

변방의 사색 / 淸草배창호 세상사 천 가지 모습과 만 가지 형상들 구비 고갯길 어이 힘들지 않겠나만 회한으로 얼룩져 곪아 터진 사념들이 마구 손사래 친다 누가 그랬든가, 영혼이 맑으면 글도 승천한다 하였는데 소낙비가 후려친 질펀한 난장 같고 까치둥지에 비둘기가 살듯이 숨바꼭질하는 이 아이러니, 흑백으로 치닫는 물보라의 포말처럼, 무지갯빛이 달랐을 뿐이라 해도 내가 원하는 건 이른 게 아닌데 갈애渴愛만을 구애하는 욕망의 모순을,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가슴 조이며 간절히 여기는 삶의 한 축에 군더더기 쏙 뺀 이심전심이라면 동고동락할 수 있는 꿈이라 여겼건만 쌓지 못하고 덫에 걸린 그 마음이 문제인 것을.

바람의 끝이 어딜까마는 / 淸草배창호

바람의 끝이 어딜까마는 / 淸草배창호 던져진 주사위 앞에 이변의 연출은 하늘을 이고 바다를 품었어도 산등성, 풍향계는 오리무중이건만 해와 달이 바뀌는 겨우살이는 온통 칠흑으로 혹독하고 시리기만 한데, 두샛바람을 기대하기엔 들불같이 이는 이합집산의 키재기로 바람에 누워버린 풀숲은 찬 바람과 찬 눈에 숨죽인 체 소리조차 폄하한 허虛한 냉대만 난무한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경극을 표방하는 포획의 물결이 늘어놓는 뜬금없이 변혁의 돛이라고 이랑 속을 마구 넘나들 건만 환상의 덫에 걸려 잘못 선택한 곁을 길동무로 초래해 날로 환청을 앓는데도 꼭짓점이 달라 색깔마저 회색 된 원죄를 묻기에는 이미 토할 수 없는 탁류의 세월로 거슬러 오르는 얼, 산산이 조각난 편린의 늪에는 침전沈澱할 긴긴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있다

소망의 등燈 /淸草배창호

소망의 등燈 /淸草배창호 마지막 남은 한 잎의 가랑잎처럼 석별의 정마저 낡은 담벼락을 잇댄 푸석푸석 어둠이 내리는 골목길이 홀로 견뎌야 했을 수많은 밤을, 사랑의 열매는 피우지도 못하고 풀과 티끌 같은 혼란에 빠진 마당을 두 눈멀 거니 뜨고 지켜보면서 초췌하고 핍박한 뼈저린 삶에서 머리와 가슴은 이미 분별을 상실한 체 딛고 설 땅은 차고 맵기만 한데 날 선 욕망에 갇혀버린 암울함이여, 함께할 수평의 자리가 갈 곳을 잃었으니 이분법의 포물선만 난무하는 세상에 무기력과 무관심은 길든 일상이라지만 칼바람의 겨울나기를 차마 어떻게 감당하리 썰물로 변해버린 조류에 안팎이 따로 없는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할 말을 잃게 하는 기약 없는 쳇바퀴의 소용돌이, 놓는다는 건, 허울 좋은 개살구이지만 석별의 정에 소망의 등 ..

낙엽이 가는 길 / 淸草배창호

낙엽이 가는 길 / 淸草배창호 한 때 넘치도록 풍미했던 네, 춤사위에 동공이 멎었는데 고운 시절 인연의 절색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 한 잎조차 그렇게 매달린 체 칼바람 서리 짓에 영혼을 잃었으니 잘난 한때도 속수무책이라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러 날이 저물고 꿈이 길다는 다가온 동토凍土의 자리매김에 텅 빈 허허로움조차 충만이라며 안고 뒹군다 한설寒雪 골바람은 시린 어깻죽지의 거죽까지 옥죄이는 사랑한 만큼 공허한 걸 깨달은 외로움을 차마 삼킬 수 없어 여운을 잠재운 옛사랑만 사그락사그락, 바스락거린다

동박새와 동백冬柏 / 淸草배창호

동박새와 동백冬柏 / 淸草배창호 긴긴 동지섣달의 한밤을 설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큼이나 홀로 견뎌야 했을 고적한 밤을 밀어내듯이 아스라이 펼쳐진 젖빛 해무에 엉킨 달마저 희붐한 창가에 걸렸다 진눈깨비 휘 내리는 잔상의 끝 달에 동백꽃 만발한 향기로운 서정의 동화, 남쪽 섬에 흔한 텃새이지만 붉도록 꽃술에서 미혹에 들게 하는 내칠 수 없는 정염의 달콤함조차 본디를 아우르는 베풂의 미학인 것을 시린 바닷바람도 늘 익숙한 일이라서 송이채 툭툭, 하늘을 향해 맑고 빼어난 토혈을 쏟고 있는 놓고 가는 결 고운 빛살만큼이나 가히 곁 지기로 꽃받이 할 수 있는 흰 테의 눈이, 군무群舞에 해지는 줄 모른다 "동박새" 동백꽃은 향기가 없는 대신 강한 꽃의 색으로 불러들여 꽃가루받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