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550

蓮花(연화) / 淸草배창호

蓮花(연화) / 淸草배창호 휘고 꺾일 것 같은 어지러운 풍미風靡의 바람이 일어도 벌판을 쓸고 온 눈 한 번 깜박일 뿐인데 전음傳音을 쏟아 낸 염원의 기지개 삶의 궤적을 일궈온 고요한 자태는 초연히 이 여름의 진상이 되었다 잎새마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또르르 넘치면 단숨에 비울 줄 아는 세속에서 보기 드문 욕심 없는 환한 네, 한 철 머무름이 짧다 해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가히 그 뉘라서 빚을 수 있을까, 뿌리에서 연자방(蓮房)까지 베풂의 충만을 물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있으면 생채기를 풀어놓은 번뇌로 휘도는 일상이 퇴적을 이루는데도 진흙 속에서 정화를 이룬 그 향기, 더없이 그윽한 연화라 하겠다

물망초勿忘草 / 淸草배창호

물망초勿忘草 / 淸草배창호 잡아둘 수는 없는 자유로운 바람이라 하지만 바람이 달달하게 부는 어느 날, 오직 가슴으로 느껴야 할 우연이 먼 발취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조차 단 하나의 문장이 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달빛에 일렁이는 걸림 없는 강물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찔레꽃처럼 환희이며, 다시 볼 수 있는 그날을 위해 하늘을 향해 합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라는, 물가에 저녁놀은 끊임없이 모두를 주고 가는 시공을 초월한 일인데도 바다로 향하는 강이 길을 잃지 않도록 은하銀河의 잉걸불을 그윽이 지피는 것은 생에 있어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고혹한 네, 있음에(推敲) / 淸草배창호

고혹한 네, 있음에(推敲) / 淸草배창호 하루도 힘겨운데 치성의 마음 아니고서야 불볕에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뜨거워진 댓바람을 얼마나 견뎌야 할까 이제 막 언약한 다가올 백날의 다짐은 초혼 같은 나날이기에 더할 수 없이 달궈는 환희입니다 티 내지 않고서도 분홍빛 꽃전을 지천에 놓고 있는 네, 그윽한 울림의 화촉을 밝혀 열흘이면 지고 말 편견을 내쳤으니 아무렴, 누가 감히 견줄 수 있으랴 오로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시절 인연의 모자람이 없는 자미화紫薇花의 기쁨입니다

바람벽壁의 절규 / 淸草배창호

바람벽壁의 절규 / 淸草배창호 경계를 넘나드는 사선에는 쪽빛만 있는 게 아니다 소나기구름이 난장 치는 변이의 사태로 그믐밤 음습한 기운이 요동치고 칠흑의 변고가 실타래처럼 엉켰어도 곤할 때는 무리별처럼 옹기종기 슬기를 추구하는 사념을 나눌 줄 알았는데 분화된 척박한 마음이 슬프다 외박이 눈으로 빗장을 치지 않았다면 철썩이는 파도의 이력만큼이나 포말의 가공에 모나지 않았을 테지만 분칠한 상실이 창을 덮은 줄도 모르고 토설吐舌을 외면한 채 발등만 쳐다보고 왔으니 조류에 떠밀린 이질의 야단으로 돌리려는 암묵적인 바람벽의 침묵만 오롯이 마디마디 불거진 옹이가 되었을 줄이야.

이 한철에는/ 淸草배창호

이 한철에는/ 淸草배창호 맹위를 떨치는 이 한철에는 한줄기 소나기가 금쪽같이 그리울 테지만 그렁그렁한 안부도 사치라는 풀뿌리의 억척을 닮았을까 밤낮이 바뀐 줄도 모르고 애증을 끌어안고 홀로 삭혀야만 했을 하염없는 까닭은 알 수 없어 차마 안쓰럽기만 한데도 오직 달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노랫말처럼 한낮엔 한없이 여린 네 모습이지만 그리움의 회포를 풀 수 있는 밤이면 화색이 감돌아 동동 날밤을 지새웠으니 희뿌연 사위가 그저 나 몰라라 동트는 것조차 서러워 새벽이슬 정인의 눈물 되어 구른다

원추리 / 淸草배창호

원추리 / 淸草배창호 초록 비가 잦은 이맘때 남청빛 바다를 그대로 빼닮은 산야에 무수히 생성되는, 날이 저물고 밀물처럼 다가오는 돋을 별처럼 잎새조차 눈부신 득음이다 진흙 속에 연꽃이 있다면 산자락에는 고요한 그리움을 예스럽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한 획의 담채를 피우고 있으니 가시덤불 속일지라도 홀로 선정禪定에 든 빼어남이 깊고 그윽한 네, 산 뻐꾹새 울음소리에 울먹울먹 뛰고 있는 나의 심장 속에 외따로이 너무 맑아서 예 머무름조차 담담淡淡한 날마다 기다림이 환희가 되었더라

망초꽃 / 淸草배창호

망초꽃 / 淸草배창호 초록 비가 그리운 이른 여름이지만 풀물이 머물러 닿는 곳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분단장이라곤 네 몰라라 하는 꼭 엄니의 무명 저고리 같은 곱살한 맵시 영판 갸름한 국화를 닮았구나 이국땅, 토착의 뿌리를 내리기까지 설움의 끝은 어딜까마는 먼발치에서 보면 남실대는 풀섶인데도 하얗게 장관을 이루는 묵정밭, 졸졸 수런거리는 실개천가 유월의 들녘에 울어대는 뜸부기 애환 같아서 벌판을 쓸고 온 바람으로 허기를 채우는 억척이 눈물겹도록 몸에 밴 찰나의 잠언을 쏟아내듯이 나름의 풀꽃을 피우고 있는 망초꽃! 지지리도 홀대당하면서 사치 없는 그리움의 꽃 사태가 되었으니.

달맞이꽃 / 淸草배창호

달맞이꽃 / 淸草배창호 하마하는 사이 별을 헤는 그리움이 산마루에 걸려 밤새 이슬 사리가 되었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이다 눈썹달에서 시작한 만월의 꽃이 피기까지는 밤이슬에 갇힌 고난의 자국을 묻어둔 사연일랑 오죽이나 할까마는 닳도록 지문指紋처럼 새겼으니 비몽사몽, 출렁이는 밤을 언제 맞이했던 적이 있었든가? 하세월 기다림도 내 몫이라고, 바람처럼 머물다 속울음 삼키며 깊어지는 망부석의 애환을 봉창에 달그림자 서린 댓잎 소리에 속절없이 새벽이 오고 이내 동은 트는데 뜬눈으로 전설의 이름값을 하는 달맞이꽃 설움의 사랑도 순정이었을까

싸리꽃 / 청초 배창호

싸리꽃 / 청초 배창호 짙어진 숲, 잎새마다 이목구비 또렷한 윤기가 하늘 닿아서 청록으로 치장한 유월의 물오른 사랑 쳐다만 봐도 배가 부르다 옛적, 고샅의 소박한 싸리 울타리로 사립문 여 닳고 하다못해 마당 비 되어서 축담에 나뒹굴곤 하였는데 부슬부슬 뿌리는 오늘 같은 날에도 소복하게도 도담한 네 보랏빛 자태 비록 섶다리는 오간 데 없지만 두고 온 옛정을 잃지 않았으니 두메산골 초야에 묻혀있는데도 수더분한 산촌山村 아낙의 오붓한 정감이 다소곳하기만 해 초여름 설은 볕이라 해도 온종일 꽃술의 유혹에 혼미한 벌, 바르르 눈시울을 떨게 하는 이슥한 해거름이 되었어도 유희를 끝낼 줄 모르니 차마 외롭다는 말조차 할 수 없겠다

유월의 접시꽃 / 淸草배창호

유월의 접시꽃 / 淸草배창호 초록의 화색이 하늘 바다를 견주려 하는 이맘때 담벼락을 잇댄 고만고만한 바르르 눈시울을 떨게 하는 접시꽃이 단비와 같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산 뻐꾹새 울음소리가 낯설지 않게 가시처럼 돋아난 그리움을 풀어내고 보리밭 이랑에는 만삭의 감자꽃이 주렁주렁 시절 인연을 반기려 합니다 졸졸 흐르는 돌 개천이 그렇듯이 날로 격식을 차리는 숲의 비명은 분수처럼 쏟아지는 기적소리와 같은 장단의 득음을 놓는 미려美麗한 그대입니다 꽃 속에 달달한 바람이 일듯 산기슭 잔솔밭에 풀물의 융단이 풍요롭고 단순한 사랑의 신록 예찬속에는 유월의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