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603

가을을 타는 까닭을 / 淸草배창호

가을을 타는 까닭을  / 淸草배창호간밤에 내린 해맑은 백로白露의 이슬,가지 끝 나뭇잎 사이로 노을빛 산하가엊그제까지만 해도 당찬 초록의 윤슬이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쉬이 떨치지 못해간절기마저 머뭇대는 그만치 놓아버린  안달 난 술렁거림이 추색秋色에 곰삭아산허리를 휘감고서 골바람에 풀어헤친 잠의 무덤처럼 고요로운 안개 바다에   꽃무릇의 고혹한 홍조처럼아우성치는 갈애渴愛를 새침스레 그려 놓았더라눈멀듯이 이 변화의 바람을 어디에 두었는지,  생채기의 자국마저도 마구 요동치는헛한 사무침은 가지마다 맴돌 것만고조한 잎새마저 한때의 꿈이라 해도괜스레 눈시울이 젖게 하는 이 가을을

환청 / 淸草배창호

환청 / 淸草배창호강가 물수제비로 한 획을 그으려 날린다주마등 시절을 새삼 낯설어하면서혼신을 다하면 못 할 게 없다며잉걸 불씨 하나를 지피기 위해열정 하나만 믿고 앞만 보고 묵묵히 왔다파문처럼 무늬로 번진 내 귀에는애틋한 속삭임만 잔잔히 들리고 있는데오늘의 석양이 저물었어도종착역이 아닌 간이역 외길 선로의외로운 신호대처럼 편견의 온갖 잔재들,평정을 유지해 가는 법을 아직도 모른다흰 구름 떠다니는 가을은 늘 아름다운 거,꽃비가 내리는 환희만 보이는 까닭을누군가는 몹쓸 병이라 말하지만깊고 그윽한 강물의 사색을 닮고 싶어단아한 단청 같은 문장을,바스락대는 가을이 걸작을 남기듯이

가을 묵화 / 淸草배창호

가을 묵화 / 淸草배창호조개구름 한 점 새털 같아도자적하는 그리움은 쪽빛 일색이더니시방 막, 소금 바다메밀밭을 하얗게 덮고 보니코스모스 농익은 춤사위아람일 듯 벙싯한 네가 오늘따라 참, 곱다산자락 억새 도리질하듯 나부껴도부대끼며 가는 세월이야 어이하래야한 춤 옷깃을 여민대도변할 수 없는 그것을 어이 알 까마는섶다리 그립기만 한 향수인데도 초가집 싸리 엮은 울타리는 옛말이 되었다세상 탓으로 돌리려니 눈에 밟히는 가시 같아서예나, 지금이나 양지바른 길섶에는돗자리 깔고 오방색 물들어 가는익어가는 가을이 널려있다정취情趣의 빨간 고추가 게슴츠레 하늘 향해 누웠으니

사지선다 四枝選多 / 淸草배창호

사지선다 四枝選多 / 淸草배창호잊힌다는 것은 삶의 자연스런 이치다잊고 싶은데도, 할 도리를 그르치면바람든 숭숭한 무 속처럼 흐물흐물한 잉여의 한계치가망막 넘어 사선의 기억 저편에는얽히고설킨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타오르는 욕망이 잇속만을 챙기는     사지선다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을   자기 나름의 꽃을 피우고 있다지만,이웃을 닮으려 하지 않고찬 새벽안개에 한 치 앞도 막연한 길라잡이 무엇으로 갈음할 수 있을까마는샛강으로 쪼개진 강물이 할 수 있는 건세월이 약이라 하는데도 오매불망한 오기에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도 네, 앓이조차 부질없음을 차마 어쩌랴.

호우豪雨 / 淸草배창호

호우豪雨 / 淸草배창호금방이라도 하늘 낯빛이 심상찮다잿빛이 사방으로 시야를 가려풍전등화를 앞세운 두 눈 부라리는 사천왕의 위용처럼칠흑의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한 치 앞의 일촉즉발이라예전에 질박했던 도량들이만상萬象이 서로 엉킴으로시금석의 주춧돌 이루었는데욕망의 덫으로 내 알 바 아니라는 심보로극단으로 치닫는 윷놀이 판의도가 아니면 모라는 오기의 마음 같아서사전에 선전포고 없이 무작정 아옹다옹하는이 시대의 두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다열대야에 쇠 등에 내리던 소나기는익살스러운 정겨움인데이내 들녘을 삼키고산허리를 베어먹는 저 심보를.

白夜의 달맞이꽃 / 淸草배창호

白夜의 달맞이꽃 / 淸草배창호이 한철을 기다리다 꽃이 된 그리움인데도능선 솔가지에 걸린 줄도 모르고밤새 이슬 사리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생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이다눈썹달에서 시작한 썰물처럼 기울어가는그믐밤에도 애절한 사무침에묻어둔 사연일랑 오죽이나 할까마는마디마디 헤진 지문처럼 새겼으나아득한 기억 먼 언저리의 오랜 날,사그라지지 않는 애틋한 미련을 어이하라고바람처럼 머물다 속울음 삼킨 체망부석 된 정한情恨의 눈물샘 마르기까지봉창에 달그림자 서린 댓잎 소리에 속절없이 새벽이 오고 이내 동은 트는데뜬눈으로 지새운 홀로 핀 달맞이꽃 어찌할 수 없는 순정을 차마 어떡하라고

천둥 벌거숭이의 무지無知 / 淸草배창호

천둥 벌거숭이의 무지無知 / 淸草배창호좋아하고 미워하는 것도얽매임 없는 사람과 사람의 일인 것처럼독불獨不의 동전 양면 낯빛처럼 아집으로 똘똘 뭉쳐 행간을 잃었으니천둥이 우짖고 폭우가 벌거숭이처럼 삽시간에 토사의 범람으로 초토화를 이루는데눈감고 귀 막은 밀당만 일삼고 있는쳇바퀴의 부재에 뒤안길이 난망할 일이다현실을 부정하는 미사여구에 뇌동雷同하는짐짓 눈에 보이는 게 허당인데 모른다는 것은양식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에도틀에 박힌 관념이 지혜롭지 못한 탓만 나무란다생각을 돌이키면 말짱 도루묵일 것 같아도눈먼 사랑도 아름답긴 매한가지인데억구億舊스럽게도 아는 게 없어낙조에 서성이는 흠결의 이내 마음이 슬프다

자미화紫薇花 연가 / 淸草배창호

자미화紫薇花 연가 / 淸草배창호바람이 훑이고 간 옹이의 설은 자국에층층시하 매단 가지마다주름골 깊은 참고 기다린 세월의 무게를지문처럼 새길 때면 불볕인들 어떠하리,칠월에는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가 있듯한해 한 번의 오롯한 연戀을 붙잡고자 하시라도 치성을 사르는 자줏빛 꽃망울, 한 꽃 한 잎마다 실로 넘볼 수 없는처연함이 실로 눈부신데도꽃이야 열흘이면 제 몫을 다하건만초여름에서 시작한 그리움의 이변이숯검덩처럼 까맣게 타게 하는달무리 깊은 상념에 취해백날을 더할 수 없는 그윽한 설렘으로저물녘이 다하도록 베푼 시절 인연의바보 같은 사랑을 차마 놓치고 싶지 않아스친 애환이 닳고도 닳아생애의 흔적조차 소멸해 가는   몸알의 반지름 한 저 상흔을 어찌하리,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소쩍새는 밤새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

산나리 홀로 외따롭다 / 淸草배창호

산나리 홀로 외따롭다 / 淸草배창호 산들바람이 곁에서 머물다산등성이를 넘어가고녹우綠雨가 뿌리고 간 자리마다찔레 숲 덤불,사이를 비집고서 빼어나도록 당차게염천 볕에서도 묵상에 든 팔등신의홍일점인 비길 데 없는 고즈넉한  네,초하初夏의 사랑이 한창이다는개 비가 고만고만 구르는녹의綠衣를 두른 산과 들을 보노라면마치 가녀린 섶마다 이슬 샘처럼 맺힌빗방울조차 어찌 저리도 고울까자연의 회귀에 내밀한 속뜰을 피우듯이청순한 기린의 목을 빼닮은 네,주근깨 문양의 매력이 하느작이는장대비에도 결 고운 빛살만큼이나 고운 자태산기슭에 핀,솔이끼조차도 수려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그렁그렁 차 있는 이내 그리움이예나 지금이나 공허한 울림의못내 못다 한  백미가 되었어도마른 눈물샘 어찌하랴 하마 손꼽아 헤어본다

파탈擺脫한 강물의 바라기 / 淸草배창호

파탈擺脫한 강물의 바라기 / 淸草배창호품고만 있으니 버릴 수도 없다구름에 감춰진 달이라면산죽山竹에나 걸어두고 싶은데무리별처럼 정감을 품을 줄도 알아차면 기운다는 걸 어이 모른 척할까마는광란이 요동치는 두 얼굴의 민낯을회한이 남지 않는 포용을 품었더라면배포만큼이나 눈이 시릴 꽃무릇 같았을 텐데오직 외눈박이에만 목매달았으니예측할 수 없는 오기에 한판 승부를 띄운 광대놀이가 시류時流의 혼미를 거듭하는 시소게임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장강의 물결을 돌릴 수 없는 것처럼도가 아니면 모라는 시금석을 왜곡하는발상의 나락에 함몰되지는 말아야지풀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잃었으니마음의 벽만큼 두꺼운 것도 없고허물어지지 않는 벽 또한 없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