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604

파탈擺脫한 강물의 바라기 / 淸草배창호

파탈擺脫한 강물의 바라기 / 淸草배창호품고만 있으니 버릴 수도 없다구름에 감춰진 달이라면산죽山竹에나 걸어두고 싶은데무리별처럼 정감을 품을 줄도 알아차면 기운다는 걸 어이 모른 척할까마는광란이 요동치는 두 얼굴의 민낯을회한이 남지 않는 포용을 품었더라면배포만큼이나 눈이 시릴 꽃무릇 같았을 텐데오직 외눈박이에만 목매달았으니예측할 수 없는 오기에 한판 승부를 띄운 광대놀이가 시류時流의 혼미를 거듭하는 시소게임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장강의 물결을 돌릴 수 없는 것처럼도가 아니면 모라는 시금석을 왜곡하는발상의 나락에 함몰되지는 말아야지풀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잃었으니마음의 벽만큼 두꺼운 것도 없고허물어지지 않는 벽 또한 없는 것이기에.

별을 헤는 그리움아! / 淸草배창호

별을 헤는 그리움아! / 淸草배창호휘영청 밝은 달, 어슬렁어슬렁산마루에 걸렸다 싶었는데별을 헤는 그리움은밤새 이슬 사리의 진수眞髓가 되었다닿지도 못하는 하늘가 별을 품으려만월滿月의 떡판이 되기까지 지문指紋처럼 닳도록 자국을 새겼으나애잔한 연민의 뻐꾸기 가락처럼오롯이 혼신을 쏟아온 지난 세월속울음 삼킨 삭막한 사랑도 눈부신 애환도 오직 내 몫의 필연이더라,그믐밤도 기울면 동은 트건만산등성을 넘어가는 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심금의 위안을 삼는하나 즉 하얗게 설은 네,정녕 화석의 전설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섬, 그 찻집 / 淸草 배창호

섬, 그 찻집 / 淸草 배창호  연륙교連陸橋가 아름다운 남해 섬해안을 낀 일주도로를 가다 보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바닷바람이 키운 들꽃 정원이랑돌계단이 아름다운 토담 찻집이 있다외로움이 곁 지기처럼 행간을 넘나들어그리움을 앓는 사람이라면섬이 분신처럼 동병상련이라서창가에 앉아 바라보는포말이 일고 있는 바다는 저미도록 아프다고즈넉한 이 분위기는 산중 도량에만칩거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갈매기 소리조차 상념을 낳고 있어하얀 겨울이면 절로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한때 아집이 방랑의 뒤안길로 못내 돌아서게 하였지만 소회의 아픈 기억을 파도가 철썩이는 침묵의 바다에 띄웠다

편린片鱗 / 淸草배창호

편린片鱗 / 淸草배창호물은 산하를 품어 안고돌 개천을 구비 돌아속박받지 않는 유유자적에 들었는데바람은 딱히 정해진 곳 없어휑하게도 길 위에 서성인다花無十日紅, 꽃은 길어야 열흘인데 홍류동 붉은 단풍 물도 한 철이듯달달한 구름의 함몰에 넘치듯 도취한불볕 같은 욕망이 이미 선을 넘었건만한 치 앞도 모르고 설전만 난무하는눈먼 비상이가지 끝에 걸려 대롱인데도입바른 붓끝은우리 집 봄이와 사랑이처럼 간식에만 꽃혔다 누군가에 길을 잃지 않도록  기억의 수장고收藏庫에 왜, 광란의 질주는 점입가경이기에옛사랑이 될 수 있는 괴리도 그만큼처음도 마지막도 다 한 때일 뿐이건만.

싸리꽃 비에 젖어도 / 淸草배창호

싸리꽃 비에 젖어도 / 淸草배창호청록 산수에 물들인 보랏빛 사랑이앙증한 궁합의 싸리꽃 피울 즈음 하마, 기다렸듯 장맛비 몸 풀러온다     윤기 머금은 잎새마다 수려한 동색으로  옥구슬 굴리듯 산야의 득음을 놓는 초록의 세상 쳐다만 봐도 가슴 설렌다옛적 고샅에는 흔하디흔한 싸리 울타리 사립문짝에도,하다못해 몽당비 마당에 나뒹굴곤 하였는데부슬부슬 잠비의 녹우綠雨가 또르르 굴러도소담한 자연의 진풍경,  있는 듯 없는 듯 초야에 묻혀있는 아낙의 다소곳한 정감이 예나 지금이나수더분한 정을 잃지 않았으니초혼初昏까지 넘쳐나는 실바람처럼성찬이 아닌데도 진종일 서성이는벌들의 입맞춤에차마 외로울 새조차 없겠다

소쩍새 / 淸草배창호

소쩍새 / 淸草배창호새벽이 이미 기운 으스름달을 물고 있어 희붐한 잔솔밭 날 샌 줄도 몰랐다 소쩍소쩍, 밤새 목이 쉴 만도 할 텐데 심금心琴을 켜는 애절한 네 가락에 가물가물 눈꺼풀이 한 짐인 별마저 깨웠을까, 해 오름은 아직도 이른데무엇이 그토록 애닳아 하얗게 지새웠는지 아롱아롱 눈에 밟힌 임의 얼굴에 속절없이 설은 자리를 틀었으나 하마, 안개 이슬에 젖은고적孤寂을 깨우는 아스름한 먼동에  어쩌지도 못한 속울음 그리움에 우짖는 소쩍의 구슬픈 연가

그때, 유월의 비 / 淸草배창호

그때, 유월의 비 / 淸草배창호밤꽃의 알싸한 향기는 흐드러졌고밤새 이파리를 쓸어내리는 유월의 비는외로움에 굶주린 목마름을 풀어주는단비인 줄만 알았는데 무임 승차하듯이분토로 돌아가는 감내할 수 없는 그 순간까지도애통해 그칠 줄 모르는 눈물비가 되었다작금의 백세시대라 해도때가 되면 어련히 떠나야 하는 것을,파 뿌리가 되려면야 아직은 살만한 그만치인데슬프고 궂은일도 한때이고기쁘고 잘나가던 때도 다 한때인 것을,정녕 정해진 운명의 질서인 것을 몰랐다학창 시절부터 함께한 벗을 떠나보내면서,창동 불종거리를 배회하다조촐한 버들 국숫집을 자주 찾았으며예술촌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제목 없는 얘깃거리로 해 지는 줄 모른 게 다반사였는데이렇게 추억의 뒤안길이 쉬이 될 줄이야,장맛비로 추적이는 유월 비와 함께생이 다해 홀로 ..

들 원추리 (野萱草) / 淸草배창호

들 원추리 (野萱草) / 淸草배창호녹우綠雨가 쉬엄쉬엄 내리는 유월에는잎새마다 충만해지는 윤기가이슬을 구르는 조촐한 모습이 절창인데초록의 산야를 주황의 꽃등으로  한 획을 긋는 들 원추리(野萱草), 비바람에도 휘지 않는 고아한 맵시는토속 미가 찬연히 피어난 팔등신이래도바라보는 일조차 그윽한 즐거움이다  연蓮이 없는 연못을 생각할 수 없듯이유월의 산야에 홀로 득음得音을 누리는 것처럼소리를 보고, 향기를 들을 수 있는망우초忘憂草의 기다림 하나만으로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마음을 올 고이 사르는 모애초母愛草처럼  넘나물의 깊은 옛적 기억이 순환으로 울려 퍼지는 적요한 그리움이다

망초! 풀물이 닿는 곳이면 / 淸草배창호

망초! 풀물이 닿는 곳이면 / 淸草배창호녹우綠雨가 한줄기 그리운 유월이지만풀물이 머물러 닿는 곳이면꼭 엄니의 무명 저고리 같은 곱살한 맵시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영판 갸름한 국화를 닮았구나망국의 설움을 딛고 선 끝은 어딜까마는토착의 뿌리를 내리기까지먼발치에서 보면 남실대는 풀숲이 딱인데때아닌 봄눈을 뒤집어쓴 묵정밭처럼들녘의 메마른 바람 소리만 듣다가 뻐꾸기 뻐꾹 우는 소리 한없이 애잔하다망초도 꽃이냐고 지지리 홀대당하면서벌판을 쓸고 온 바람으로 허기를 채우는억척이 눈물겹도록 몸에 밴보란 듯 시절 인연을 쏟아내듯이외따로운 이국異國의 설움에 사치 없는 그리움만 꽃 사태가 되었으니

유월 미려 / 淸草배창호

유월 미려 / 淸草배창호초록 비를 뿌리는 소만小滿의 어스름 녘,바다를 닮으려 하는 이맘때면유월의 담벼락에 옹기종기 접시꽃이수더분한 고만고만 정겨움을 쌓은아취가 시절 동행의 한 획을 이룹니다녹의綠衣 유월은,빛살마저 분수같이 쏟아지는 젊음인 양사랑한다는 것은주는 일이요 나누는 일이라서 아련한 연민의 간이역 기적소리와 같습니다풀피리 소리에도 귀 기울였던 그 시절찔레꽃 장다리 씹어먹은 잔솔밭 시오리 길도대나무 바람 소리에 스쳐 간 옛날이지만,두고 온 고향 산천은 즈려밟고 가도 좋을초록 융단을 펼친 아름답고 고운 유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