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참외서리

덕 산 2012. 6. 16. 15:08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하교길에 신상식이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태월리 싸르매 고개넘어서 둔덕리 월치로 가는 길이 두 군데가 있었다.

 

하나는 한약방이 있었던 골목길로 가는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송은섭이네 집 옆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상식이와 나는 은섭이네 옆 길로 해서 고갯마루를 넘어가는데....

고개에 있는 참외밭에 참외가 보릿대위에 노랗게 익은 것이 보였다.

 

개량종인지... 그 노란빛깔이 신비롭게 보였다.

하교길이라 배도 고프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으로 말하고

두 놈이 똑같이 대각선으로 묶은 책보를 펼치고

두 어개 씩 잘 익은 것으로 따서 책보에 묶는 순간....

아뿔사 태월리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붙잡혔다.

 

이 어른은 우리를 따라오라며 학교앞 가게까지 데리고 가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놈들이 참외 서리를 해서 붙잡아왔다며....

마치 자기가 살인 용의자라도 붙잡은 냥 목소리를 높이며,

상식이와 나에게 죄를 지었으니 죄 값을 치뤄야지 하면서

서로 마주 쳐다보라고 하더니,

상식이와 나에게 상대의 뺨을 때리라고 한다.

 

상식이와 나는 중죄를 저질러 벌 받는다 생각하고,

순진한 마음에 서로의 눈을 보면서 아프지 않도록 때렸다.

이 어른은 못 마땅해 하며 야 이놈들아 소리 나게 때려라하고 호통을 친다.

상식이를 보니 눈에 눈물이고였다.

그 모습 보니까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서로를 아프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여린 손맛도 여러 대를 맞고 나니..... 턱 조가리가 얼얼하다.

그 어른 기분이 좋아서 껄껄대고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

장황하게 설명하며 법석이다.

 

상식이와 난 한참 뒤에야 집에 올 수 있었지만,

몇 일 동안 턱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애지중지 기른 농사 어린 녀석이 손을 대 서운했겠지만....

그 어른 우리에게 참외하나 주지도 않아 지금까지 서운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 추억이지만......

그 어른 아마 지금도 생전에 계실 것 같다.

 

그리고 상식이가 지금 수원에 살고 있는데.....

두어 번 통화를 했는데, 왠지 만나기가 어렵군...

모 방송프로 타이틀처럼 꼭 한번 상식이를 만나고 싶다.

만나면 참외 상자로 사줘야지........

 

참외장수 앰프소리에 50년 전 추억으로 달려가고 있는 주말의 오후 시간이다

 

- 2004. 6. 26. (동심회 카페에 올린 글)-

반응형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주팔자  (0) 2012.06.17
어머니와 세모시  (0) 2012.06.16
사랑이란?  (0) 2012.06.16
개나리  (0) 2012.06.16
감자 이야기  (0) 201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