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른들은 오늘 같이 내리는
봄비를 쌀 비라고 부르던 기억이난다.
머지않아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작은 가지마다 새싹이 돋아나겠지....
10여년전 부터 시골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 비어있었다.
집 뒤에는 왕 대나무 밭이 있는데
옛날에는 일 년에 몇 차례 팔아서 수입원이 되곤 했는데,
프라스틱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대나무 번식은 일 년에 5-10미터씩 영역을 넓혀 가는데...
집 마져 대나무로 가려질 지경이 되었다.
3년 전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모두 캐버렸는데,
아버님은 집 뒤편(뒤안)이 왠지 허전하셨던 것 같다.
2년 동안 개나리를 삽목하여 가꾸신 묘목을
부락민과 같이 집 주위에 심으셨다.
우리도 고향이 항상 그립고 고향 집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애착은 많이 있지만...
아버님의 고향 사랑은 뭐라고 형용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셨다.
그래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시골집에 개나리를 심으신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심으신 묘목을 확인하시려고
집 주위를 다니시다가 낙상하셔서 10여일 후 돌아가셨다.
지금 산수유는 노란 꽃망울을 반쯤 터트렸다.
노란색만 보면 개나리와 아버님이 생각난다.
매일 출.퇴근 시 옹벽에 토사 방지용으로
개나리가 심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하루도 잊혀 지질 않는다.
왜 그 많은 수종 중 개나리를 택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님은 우리 형제에게 토박한 땅에서도 뿌리내려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작은 가지로 서로 의지하며...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꽃을 피울 수 있는 개나리처럼....
그렇게 거친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가라는
무언의 유언을 남기신 것 같다.
--- 2004. 3.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