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가 산다
- 이 향 숙 -
오일 장에 가서 보았다
점포는 길을 향해 나 있다
문도 그렇다
길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 안에 든 주인은 꽃이다
백일홍나무들이 발 하나씩 파묻고 꽃을 피우듯
제 색깔 꽃 하나씩 피워 보고 싶은 거다
붉거나 푸른 검거나 노란 색들의 집, 층층
그러다 시들해 질 땐 점포가 꽃이 된다
문은 열어 두고
주인은 인기척도 없이
멀미나는 바람만 햇빛으로 들락거린다
점포 주인도 다들 외로운 거다
갑갑한 집을 슬쩍 버리고 와선
길욮에 붙어서 무엇을 파는 척 한다
한 생의 잠깐, 지는 줄도 모른체
꽃피는 척 하며 버텨 가는 것이다
날마다 길에 오가는
비슷비슷한 꽃들의 그늘을 제 얼굴 반쪽에
가만히 포개보거나 짚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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