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평

[주용중 칼럼] '부패와의 戰爭'이 맥빠진 이유

덕 산 2015. 5. 20. 14:42

 

 

 

 

 

 

 

주용중 정치부장 이메일midway@chosun.com

입력 : 2015.05.20 03:20 | 수정 : 2015.05.20 11:14

 

등장인물들의 僞善과 예상치 못한 反轉이 희극적

정권 下請 받는 듯한 검찰은 성완종 올가미서 꼼짝 못해

냉소 키우는 '정치 司正' 대신 '민생 司正'에 집중할 때

 

박근혜 정부 3년 차에 상영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은 박진감 넘치는 수사드라마여야 한다.

하지만 벌써 맥이 풀려 버렸다. 자신의 위선을 남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양 행동하는

등장인물들이 잠시 관객들의 흥미를 끌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부패와의 전쟁을 기필코 완수하겠다"던 이완구 전 총리가 검찰 수사를 앞장서 받는 대목은 어이가 없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살 전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신뢰를 강조했지만 그의 신뢰는

'돈을 받으면 돈값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희생양이 됨으로써 깨끗한 정부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는 자신이 복수하고 싶은 사람 몇 명만 추린 '불공정 리스트'이지 순수한 고해성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 사정(司正) 드라마의 기획자가 누구일까 궁금해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떠나기 전 밑그림을 그려놓았다고도 하고, 우병우 민정수석의 과욕 탓이라고도 한다.

그런 측면들도 있겠지만 원()저자는 작년 416일 이후 부패 척결에 꽂힌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의 뿌리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비리가 웅크리고 있고,

그 비리를 거둬내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여긴 것 같다.

 

작년 5월 안대희 전 대법관은 총리에 내정되자 "부패 척결로 공직을 혁신하고 국가의 기본을

바로 세우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하지만 그에 이어 총리 후보자가

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마저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면서 '사정 사령탑'으로서의

총리 기능은 유보됐다. 작년 8월 총리실에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이 신설됐을 뿐이다.

불행의 씨앗은 이완구 전 총리가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하는 정치 총리·소통 총리로 자리매김하는 대신

'안대희 모델'을 택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셈이었다.

 

 

 

 

 

 

딱한 처지에 놓인 건 검찰이다. 검찰은 지난 2월 대규모 인사 뒤 신발끈을 매고 있었다.

대개 큰 수사를 하려면 2개월 정도는 내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전 총리가 312일 자원외교,

방위산업, 대기업 등 3대 비리를 콕 찍어주면서 사정 기관들을 독려한 것이다.

바로 다음 날 검찰은 포스코건설을 압수 수색했다.

이렇게 서두른 탓인지 포스코 수사는 두 달이 넘도록 큰 진전이 없다.

 

항간에는 검찰이 정권의 '하청(下請) 사정'을 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높은데 청와대는

갈수록 부패 척결을 강조하니 검찰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사 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정권이 사정에 앞장서는 순간 그 사정은 이미 절반쯤 실패한 사정이 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찰은 자원외교 수사의 첫 타깃인 경남기업에서 별다른 비리를

못 잡자 '별건(別件)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가 진창에 빠졌다. 성완종 리스트란 올가미 안에서

움쭉달싹 못하고 있다. 나중에 특검이라도 하게 되면 망신을 당할 수 있으니 수사를 제대로 안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죽었고 그의 측근들은 비협조적인 상황에서 수사를 하고 또 해도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

캄캄한 길을 종착지도 모른 채 사방으로 뛰고 있는 형국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자마자 '친박(親朴)게이트 대책위'부터 꾸린 야당도 촌스럽다.

야당 내에서 누가 성 전 회장이랑 친하고, 누가 그에게서 돈을 받았을 법하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자신들만 깨끗한 척하니 민심이 시큰둥한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과거보다 부패가 덜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야 할 길은 멀다.

작년 한국의 부패지수는 세계 43위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부패 척결이라면 국민의 공감은커녕

냉소와 수사 피로감만 키운다. 앞에선 경제를 살리자고 해놓고 뒤에선 수갑을 들이미는 정권에

대한 경제계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검찰은 중수부가 해체되자 서울지검 특수부를 기형적으로 키웠다. 대형 사건을 통해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다 보니 대형 로펌의 수입을 올려주는데 기여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차라리 검찰이 서민부를 신설해 특수부 정예 인력을 투입하는 게 낫다. 서민들은 지금 주가 조작꾼들,

동네 주먹들, 일부 비열한 상가 주인들, 사이비 언론인들에게 당하며 살고 있다. 결과가 뻔해진

'정치(政治) 사정'보다는 서민들의 시름을 펴주고 울음을 닦아주는 '민생(民生) 사정'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 출 처 : 조선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