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복순(hel***) 2015.05.15 00:10:38
작금에,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새정치연합의 총·대선승리를 위한 湖南(호남)주민들의
20대總選(총선)과 19대大選(대선) 관리차원에서 당권을 요구하는 박지원을 외면하고,
2.8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서 대권만 염두에 둬야할 문재인이 지난 한명숙 대표처럼
親北左派(친북좌파) 親盧(친노)들의 공천독식을 위해 당권을 齷齪(악착)같이 잡자,
금번 4.29재보선에서,
호남의 본산 광주에서➡ 호남세력이 27년간을 不敗(불패)한 서울의 관악에서➡ 호남주민들이
우세한 경기 성남의 중원에서➡ 호남주민이 적지만 인천·강화에서, 호남주민이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새정치연합과 문재인에게 全敗(전패)로 가르쳐 주었는데도 賊反荷杖(적반하장)
黨權(당권)·大權(대권) 둘 다 노무현처럼 몽땅 갖겠다는 과욕을 부리고 있어,
✩湖南(호남)을 主(주)支持基盤(지지기반)으로 국회의석 130석을 가지고
제1야당을 구가하는 새정치연합에서 영남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親盧(친노)세력들이
黨權(당권)·大權(대권)을 몽땅 장악하고 패권전횡을 일삼자 호남주민들이
故노무현 한번으로 족하다며 이제 湖南 發(호남 발)新黨創黨(신당창당)으로
친북좌파인 강경親盧(친노)를 비롯한 문재인과 결별을 준비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호남주민들이 90%가 넘는 콘크리트支持(지지)로 만들려는 湖南發(호남 발) 新黨創黨(신당창당)을
湖南黨(호남당)이라며 貶毁(폄훼)하고, 김대중 前대통령 같은 인물이 없어
실현불가능하다며 僞善(위선)을 떨고 있는데,
❶첫 번째 湖南 發(호남 발) 新黨創黨(신당창당),
제13대 大選(대선)에서, 統一民主黨(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의 대통령 후보선출을 앞두고
金泳三(김영삼))과 제13대 대통령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김영삼의 상도동계가 장악한
통일민주당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金大中(김대중)과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탈당하여 국회 제3당으로 출범하여
1987년 11월 平和民主黨(평화민주당: 약칭 평민당)을 창당하여 총재 겸 대통령후보로
김대중을 선출, 그 해 12월에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출마
야권분열로 民主正義黨(민주정의당)의 盧泰愚(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곧바로 1988년 4월에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70석을 확보, 통일민주당(총재 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총재 김종필)을 제2-제3야당으로 밀어내고 제1야당이 되었는데,
1990년 1월 與小野大(여소야대) 정국을 전환하려는 민주정의당(노태우 대통령)과
3당 합당을 통해 통일민주당(총재 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총재 김종필)이 與黨(여당)으로
변신하여 대한민국에 평화민주당만의 유일野黨(야당) 시대를 살면서,
이후 평화민주당은 1991년 4월 재야출신인사들로 구성된 新民主聯合(신민주연합)과 통합하여,
당명을 新民黨(신민당)으로 바꾸었다가 1991년 9월 民主自由黨(민주자유당: 약칭 민자당)으로
가지 않았던 통일민주당 잔류파들이 만든 民主黨(민주당: 일명 꼬마민주당)과 통합하여 새로이 민주당을 창당,
1992년 3월 24일 치러진 제14대 총선에서,
149석을 얻어 과반에서 1석 모자라는 참배를 당한 집권당인 민자당에 이어 97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통일국민당 31석, 신정치개혁당 1석, 무소속 21석을
아우르는 與小野大(여소야대)政局(정국)을 주도하다가,
1992년 12월 치러진 제14대 大選(대선)에서,
民主自由黨(민주자유당: 약칭 민자당)의 김영삼에 패배하자 국회의원 직을 辭退(사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유학을 떠났는데,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에도 여전히 현실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김대중 前총재는
1993년 1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약칭 아태평화재단)을 설립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장서서 진두지휘하여 서울시장을 비롯한
광역자치단체장 4명, 기초단체장 352명, 광역의회 의원 857명을 당선시키며 壓勝(압승)으로 이끌었지만,
당무에서 사사건건 김대중 前총재와 각을 세우며 맞선 이기택 총재와 민주당을 차버리고,
➋두 번째 湖南 發(호남 발) 新黨創黨(신당창당),
1995년 7월 17일 김대중 前총재는,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선언하고 95명의
민주당의원 중에 탈당한 65명과 1995년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약칭: 국민회의)를 창당했는데,
국민회의는 창당과 동시에 제1野黨(야당)이 되어,
1996년 4월 11일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대통령 김영삼)은 과반에 못 미치는 139석에 머물렀지만,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으로 제1野黨(야당)이 되어, 김영삼과 결별하고
자유민주연합(약칭 자민련: 총재 김종필)을 창당 50석으로 국회 제3당으로,
30명에서 국회교섭단체 정족수에도 못 미치는 15석으로 대폭 축소된 통합민주당은
제4당으로, 무소속 16석의 제1야당으로 세 번째 與小野大(여소야대) 政局(정국)을 주도했는데,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차버린 통합민주당은 1997년 11월 24일 신한국당에서
당명을 바꾼 한나라당(총재 이회창)과 합당하여 소멸되고 그 중에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등
일부는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여,
국민회의(총재 김대중)는 1997년 12월 18일 실시될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97년 10월 31일 자민련(총재 김종필)과 ‘내각책임제’에 합의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국민회의+자민련 연합 제15대 대통령 단일후보”로 추대하여,
1997년 12월 18일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39만 557표차로 누르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이어 제16대 대통령에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하며
진보정권으로 政權 再創出(정권 재창출)을 이룩하는 역사적 쾌거에 대해,
15대 대통령에 당선된後 언젠가 김대중 대통령은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오로지 나를 믿고 100%에 이르는 절대支持(지지)를 보내준 湖南(호남)주민들의 승리다.”라고
闡明(천명)한 사실에 비추어,
오늘날 17대➡18대 대선에서 연속으로 정권창출에 실패하고,
18대➡19대 총선도 與大野小(여대야소) 政局(정국)인데,
湖南(호남)주민들이 90%가 넘는 콘크리트支持(지지)로 만들어준 국회의석
130석인 제1야당에 안주하여 개혁은 뒤로하고 친북좌파들의 눈치만 보며 숨은 중도우파와
새정치연합의 패권에 눈먼 문재인과 친북좌파들을 버리고,
✩저렇듯 2번에 걸쳐 成功(성공)한 新黨創黨(신당창당)이 90%가 넘는 콘크리트支持(지지)를
보낸 호남인들의 승리라고 김대중 前대통령이 闡明(천명)한,
湖南(호남)주민들이 중도우파까지 아우르는 湖南 發(호남 발) 新黨創黨(신당창당)할
자격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2번의 역사가 있는데 감히 누가 貶毁(폄훼)하려 드는가 말이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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