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벌초를 마치고...

덕 산 2017. 9. 15. 14:15

 

 

 

 

 

 

 

 

부모님 산소에 벌초하러가기 위해 새벽에 집사람과 같이 집을 나섰다.

매 년 주말을 이용해서 벌초했는데 고속도로가 명절 못지않게 정체되어

너무 힘들어서 금년엔 평일에 하기로 했다.

 

이른 새벽이라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차량소통이 적어 고향 가는 길이 수월하다.

고향으로 내려갈수록 날이 점점 밝아져 대천을 지나면서

고속도로변 논에 벼이삭이 누렇게 변해가는 게 보인다.

 

고향은 삶의 근원을 이루는 공간이다.

그래서 삶이 힘들 때 고향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다.

유년시절 여러 형제와 함께 가족의 따뜻함과

부모님의 사랑과 정을 느끼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둥지 틀고 생활한 세월이 강산이 몇 번 변해버렸다.

꿈속에서 그리던 고향과 달리 현실은 거리가 있어

살며... 애틋한 그리움만 가지게 된다.

 

처가에 도착해서 장모님과 처남 내외분께 인사드리고 아침 식사 후 예초기와 낫,

갈퀴를 차에 싣고 고향 마을로 향했다. 예전 주막이라고 부르던 조그만 가게에서

벌초 후 상석에 올려놓을 소주와 안주 그리고 음료를 구입했다.

 

2002년도 어머님께서 타계하시고 다음 해에 아버님께서 타계하신 후

매 년 3회씩 벌초를 하다가  작년부터 년 2회 벌초를 하고 있다.

이제 나이 때문인지 벌초 후 며 칠 동안 무척 힘이 든다.

그래서 벌초횟수를 줄였으나 세 번 할 때와 두 번 할 때의 차이점은

세차례 벌초를 하는 경우 풀이 많이 자라지 않아 작업하는데 수월하지만

두 번 벌초하는 경우엔 풀이 많이 자라서 작업이 좀 어렵다.

 

 

 

 

 

 

 

고향마을 농가와 지척에 있는 부모님 산소는 마을회관 옆 밭에 모셨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시기에 마을에 토지를 많이 양보하셔서 마을 주민들도

부모님 산소를 이곳에 모시는데 별다른 거부감을 나타내시는 분이 없었다.

아버님께서 이곳으로 오시고자 한 이유는

산으로 모시면 자손이 찿아 오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초가을 날씨지만 예초기를 등에 지고 작업하는데 옷이 흡뻑 젖는다.

작업하며 부모님 살아생전 모습과 성품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부모님께서 농사 지으실 땐 산소 앞 밭에 잡풀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작물이 없으니 잡풀과 억새, 아카시아 나무만 무성하다.

 

부모님께서 타계하신 뒤 산소에 봉분 둘레석과 碑石(비석)를 세웠는데

이로 인해 벌초하는데 더 어렵다. 둘레석과 상석, 비석에 행여

예초기 날로인해 훼손될까 염려되어 낫으로 작업해서 작업시간이 길어진다.

 

작업을 마치고 칼퀴로 풀을 끌어 산소밖에 버리고...

상석에 소주와 안주 그리고 음료를 놓고 배()을 올리며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제물입니다만 흠향(歆饗)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평소 애주가이셨던 아버님은 제주 석잔으론 모자라니까

남은 술을 모두 봉분 주변에 뿌렸다.

추석에 형님 내외분께서 준비한 차례상을 올리지만

산소를 찿아올때마다  소주와 안주, 음료 등을 준비해서 올리고 있다.

 

간단하게 준비해서 올렸지만 벌초 후에 올려서

조금이나마 자식 된 도리를 한 것 같아

작은 짐을 벗은 것 같고 마음이 좀 편해진다.

 

파란 하늘에 여러 모양의 뭉개구름이 흘러간다.

오늘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은 가볍고 구름 같이 두둥실 떠 있다.

 

- 2017. 09. 15. -

 

 

 

 

 

 

 

고 향

     - 정 지 용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상농사 월동준비  (0) 2017.11.05
추석연휴   (0) 2017.10.08
9月 어느 날의 斷想  (0) 2017.09.03
기분 좋은 날...  (0) 2017.08.07
갑상선결절 조직검사  (0) 2017.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