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에는 / 추명희
가을에는
이천에 가겠다.
수수밭의 수수들이 줄지어 서서
저마다 신을 지키고 섰는
그 숙인 얼굴 보러 가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들판으로 서러움은 밀리고
산과 산이 어깨를 감사안고
서로 사랑하는 것 보러 가겠다.
산다는 것
진정으로 어여쁘더라
그때 우리는
어둠 속으로만
어둠 속으로만
비잉빙 돌던
한 떼의 철 늦은 새떼였느니
가을에는
들판으로 가 서 있거라
반라의 목숨 가릴 것 없이
살과 피 공손하게 받쳐들면
햇빛으로 잘 익은
알약 하나 주시리라.
가을걷이한 빈 들판
빈 마음 진실로 가볍고
눈 끝에 매달리는
우리들
맨 처음 눈물도 되돌려 받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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