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윤민혁 기자 최상현 기자
입력 2018.08.23 06:00 | 수정 2018.08.23 08:15
23일 새벽 한라산 초속 62m 강풍
거센 바람이 땅, 하늘, 바다 집어삼켜
제주공항 이틀째 운항 중단
느리게 다가온 제 19호 태풍 ‘솔릭’이 23일 새벽 7시 현재, 제주의 하늘과 땅, 바다를 무섭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6시 현재, 제주는 초속 30m 안팎의 강한 비바람에 점령 당했다. 태풍이 강한 속도로 접근하면서
새벽 4시25쯤에는 한라산의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62m에 달했다.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22일~23일 오전 7시까지
무려 655mm의 폭우가 내린 것을 비롯, 제주 전역에서 100mm 넘는 비가 쏟아지고 있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7시 현재 "태풍 솔릭이 제주 서귀포 서쪽 90㎞해상에서
시속 16㎞ 속도로 북북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국제공항 하늘길은 이날 첫편부터 결항됐다. 전날(22일) 오후 6시부터 본격화된 운항중단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이날 첫 비행기가 뜨는 오전 6시부터
오전 10시 35분 현재까지 까지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낮 12시 25분 출발편까지 운항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날 오전 6시까지 제주국제공항에서는 모두 28편(출발 7편, 도착 21편)이 결항됐고, 전날에는 국내선 155편
(출발 76, 도착 79)과 국제선 9편(출발 7편, 도착 2편) 등 총 164편이 결항됐다.
제주공항 출발편 기준으로 약 2만명이 뭍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큰 게 온다는데" 주민들은 전전긍긍
"한 6년만인가요. 한라산 중턱엔 400㎜ 폭우가 온다는데… 다들 큰 태풍이라고 해서 긴장하고 있습니다.
" 제주 토박이라는 택시기사 김종택(68)씨는 태풍 예보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예상보다 더디게 온 태풍에 제주가 떨고 있다.
22일에는 태풍이 아직 본격적으로 섬을 때리지 않았는데도 실종자가 나왔다. 22일 오후 7시쯤 제주 서귀포시
소정방 폭포 인근에서 20대 여성 1명이 사진을 찍던 중 파도에 휩쓸려 실종돼 경찰이 수색 중이다.
제주 위미항에서는 방파제가 유실됐고, 서귀포시에서는 559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22일 온종일 제주는 섬 전체가 ‘태풍’의 긴장감으로 휩싸여 있었다. 비상사태라고들 했다. 서귀포시 한복판
거리에 문을 연 가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게 외벽에 붙여놓은 회전등 나사를 조이던 미용실 원장은
"이것(회전등)만 고정하고 오늘은 접으려고 한다. 제발 간판만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배는 지켜야 한다"
이날 오후 서귀포항. ‘집채만한’ 파도라는 걸 직접 보니 실감했다. 생선으로 가득해야 할 어판장은 텅텅 비었다.
항구엔 257대의 고깃배가 밧줄로 이어져 출렁이고 있었다. 동경호 선장 강모(62)씨는 "동중국해에
갈치 잡으러 나갔던 어선이 그저께 모두 들어왔다. 한 이틀 밧줄 작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출렁거리는 어선 위에는 선원들이 곡예를 하듯 오가고 있었다. 배를 맨 밧줄이 튼튼하게 묶여 있는지 보고 또 봤다.
한 선원은 "밧줄이 끊어지거나 배끼리 부딪히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며 "배를 지키기 위해 당번을 정해 밤을
지새울 거다"라고 했다. 강 선장은 "이번 태풍은 워낙 크고 진로도 정통으로 지나간다고 하니
배가 무사할지 걱정이다"라고 했다.
여섯 평 남짓 선장협회 사무실에는 선장 30여명이 모여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김성일(44) 서귀포항
선장협회장은 "선장 60여명이 어제 저녁부터 비상대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12년과 2016년 태풍 때
밧줄이 터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밤새 배에서 대기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하나뿐인 생계수단인데 어쩌겠냐. 배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항구로 파견 나온 경찰도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서귀포해양파출소에선 8명이 투입됐다. 현관용(49) 경위는
"어제는 선원들과 함께 배를 묶는 작업을 도왔다"며 "태풍이 본격적으로 몰아치는 밤에는 구조정을 타고
실족해 바다에 빠지는 선원이 없는지 잘 살필 계획"이라고 했다.
◇감귤 농가, 비닐하우스 뼈대지키려고 비닐 찢어
감귤 하우스 재배 농가가 몰려 있는 서귀포시 월평동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쯤. 마을회관에서 만난 최준영(36)씨는
"올여름은 폭염과 가뭄이 겹쳐 작황이 안 좋은데 태풍까지 지나가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며 "농사는
포기하더라도 하우스는 지키자는 마음이 들어 뼈대라도 지키려고 비닐을 찢어버리는 농민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4300여㎡(1300평) 규모 감귤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고근호(52)씨도 "감귤을 포기하고 비닐을 다 걷어 올렸다.
바람이 통과해야 비닐하우스가 쓰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건설 비용은 3.3㎡당 11만원 정도.
고씨네 비닐하우스가 모두 파손되면 1억5000만원 가량의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어슴푸레 해가 넘어가자 비바람이 거세졌다. 빗방울이 굵어졌는데 강풍도 몰아치니 비가 오고 있는지,
아닌지 못 느낄 정도였다. 우산은 뒤집혀 나뒹굴었다. 성인 남자가 걸음을 옮기기 어려웠고, 거리의 간판들은 덜렁덜렁
흔들렸다. 서귀포 동문로터리의 한 편의점은 태풍 피난민 ‘임시보호소’ 역할을 했다. 20대 남녀가 들어와 "산 지 5분만에
우산이 망가졌다"며 우의를 샀다. 아르바이트생 정난경(25)씨는 "오는 사람마다 망가진 우산을 내다 버리고
우의를 사서 간다"며 "나도 11시에 퇴근하는데 어떻게 가야할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했다.
오후 9시쯤. 마치 하늘에서 파도가 치는 듯했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10초도 안 돼 안경이 빗방울로 가려졌다.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똑바로 걸을 수도 없었다. 급히 비를 피해 인근 건물로 들어갔다.
함께 비를 피하던 김혜린(36)씨는 "집이 가까운데 오늘은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했다. 잠시 바람이 잠잠해지자
김씨는 망가진 우산으로 머리를 가리고는 뛰어갔다. 이런 상황이 웃긴지 "푸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각 서귀포의 풍속은 초속 30m. 기상청에서 알려준대로라면 목조가옥이 무너질 정도다. 조금 강해지면
열차가 넘어진다고 한다. 이날 오후 6시 9분 광주광역시로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8140편을 마지막으로
제주국제공항은 멈춰 섰다. 선박 운항도 멈춰 섰다. 하늘길, 바닷길 모두 막혀 그야말로 발이 묶였다.
제주는 온몸으로 태풍 ‘솔릭’을 맞고 있었다.
- 출 처 : 조선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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