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만 관객 돌파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고(故) 조병만(별세 당시 98세) 할아버지는 열한 살 때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세상을 떠돌았다.
스무세 살 때, 한 대장간에서 일을 하며 그 집 막내딸 강계열(90)과 결혼하기로 했다. 데릴사위가 된 셈이다.
아내가 될 여자는 열네 살. 부부의 정(情)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아내를 잠자리에서 그는 그저 쓰다듬기만 했다.
할머니는 자기를 예뻐해주는 할아버지가 집안 일꾼인 줄 알고 “아제”(아저씨)라고 불렀다.
대장간에서 6년 동안 일한 뒤 그는 아내를 데리고 나와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밭일을 하고, 나무를 하며 아들·딸 여섯을 낳아 키웠다.
워낙 힘이 좋았던지라 동네에서 신작로를 내거나 축대를 쌓는 등 일손이 필요한 곳에는 다 다니며 생계를 꾸렸다.
가족 없이 외롭게 자랐던 그는 아내와 자식들이 자기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웠다.
그들에게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고, 손찌검 한 번 한 적 없었다.
그리고 아흔여덟 살이 된 할아버지는 아직도 잠들기 전까지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어루만진다.
신혼때 생긴 버릇이다.
다큐 감독은 기록자이자 해석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2014년 12월 28일까지 관객 355만 명을 동원해 <비긴 어게인>(343만 명)을 제치며
다양성 영화 역대 흥행 1위로 올라섰고, 지난 1월 8일에는 4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제작비 1억원을 들인 이 영화는 연말 극장가에서 대작인 <호빗:다섯 군대의 전투>나 <상의원>을 제쳤다.
진모영 감독은 “이런 흥행 성적은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 관객들이 1년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몇 편이나 보나요? 국내 다큐들은 사회정치적 이슈를 많이 다뤄서
편하게 보기가 힘들어요. <서칭 포 슈가맨> <웨이스트 랜드>처럼 한국에서 성공한 다큐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나 예술가의 진심을 다룬 것들이에요. 작은 것, 개인에게서 큰 것,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이죠.
전 이 영화에 대해 자신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100세가 다 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이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로 받아들일 것이라고요.”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는 영화보다
TV 다큐멘터리로 먼저 알려졌다. 진 감독은 TV에서 이들을 봤을 때 “엄청 멋진 부부라서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다큐 감독은 기록자이자 해석자”라며 “이들을 감독을 통해서 해석하고 싶었고,
TV에서보다 세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TV를 볼 때는 딴짓도 하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하잖아요.
이 부부의 이야기는 TV에서만 보기엔 너무 아까워요. 86분간 오롯이 집중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진 감독이 강원도로 찾아가서 다큐 촬영을 제안했을 때 부부는 흔쾌히 승낙했다. 76년을 같이 산 부부에게는 같이 찍은
사진도 많지 않았다. 이들은 TV에 나오는 자신들의 모습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화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적적한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감독의 자녀들은 고령의 부모가 촬영을 다 마치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 진 감독은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촬영 도중 세상을 떠났다. 부부의 사랑은 죽음으로 끝이 났고, 죽음으로 완성이 됐다. 진 감독은 “첫 시사회 때
할머니께서 아흔 평생, 처음 극장에 오셨다고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들고 오셔서 옆자리에 두고 보셨다”고 했다.
영화는 할아버지의 산소 옆에서 남편의 옷을 태우고 주저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할머니의 등짝에서 시작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승에서 곱고 따뜻한 옷을 입기를 바라며 그의 옷을 태웠다.
“저희도 안타까운 건 할아버지께서 완성된 영화를 못 보셨다는 거죠. 할머니께서도 그 말씀은 늘 하세요.
그래서 지난 1주기 때 산소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영화를 보낸다고 생각하고 영화 관련된 포스터 같은 걸 다
태워서 보내드렸거든요. 할머니는 이 영화를 네 번 보셨어요.
추측컨대 극장에 가면 살아 계실 때 할아버지 모습이 나오니까 그게 좋으셨던 것 같아요.”
진 감독은 “출연자들을 편하게 해주고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총 촬영 회차는 120회.
나흘 이상 연달아 촬영한 적이 없다. 그는 “젊은 출연자들은 10~15일을 내리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있는 출연자들은 그런 방식을 힘들어한다”고 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훨씬 마음을 많이 쓰기 때문에 더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분들은 ‘내가 어떻게 찍히는가’보다 ‘저 사람들(감독과 스태프)은 불편하지 않을까’를 더 많이 걱정하시거든요.
이분들이 카메라를 의식 안 하게 하려면 최대한 편안하게 해드려야죠. 제가 일곱째 막내아들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자녀와 손주들은 저를 동생이나 삼촌처럼 대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남매가 싸우기도 하고요.
할머니는 계속 저를 ‘선생님’ ‘감독님’이라고 부르면서 깍듯하게 대해주셨어요.” “사랑해요”보다 “고마워요”란 말로
애정 표현 영화 상영 이후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몇 차례 가진 감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옷을 감독이
따로 준비해 간 게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부부가 같은 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감독은 “아니라고 대답해도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그렇게 묻는 관객이 많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이런 옷을 입은 적이 없어요. 젊은 시절의 사진도 없죠. 여유가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농사와 품팔이를 했고, 할머니는 바느질을 해가며 여섯 자식들을 키웠어요.
자식들이 다 크고 나서야 옷을 사 입은 분들이에요. 할아버지가 칠순 때 자식들에게 한복을 해달라고 하셨대요.
두 분이 ‘커플 룩’으로 입고 싶어서. 그 후로 손자와 손녀들이 결혼을 하면서 옷도 한두 벌씩 늘어났죠.
두 분의 평생 취미가 커플 룩으로 곱게 차려입고 오일장에 나가는 거예요.
TV에 처음 출연하신 것도 오일장에서 방송사 관계자들의 눈에 띈 게 계기였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데이트는 사시사철 바뀐다. 데이트라는 게 별거 없다. 봄이면 꽃을 따다가 서로의 머리에 꽂아준다.
여름에는 개울에서 물싸움을 하고, 가을에는 마당을 쓸다가 낙엽을 헤치며 논다.
겨울에는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한다.
주로 할아버지가 먼저 장난을 걸면 할머니가 맞받아치는 식으로 데이트가 시작된다.
진 감독은 “할머니의 유일한 불만은 할아버지의 장난이 심하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젊었을 땐 할머니가 길쌈을 하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뱀을 잡아와서 놀래키고,
외출하면 집에 숨어 있다가 놀래키고 그랬대요. 할아버지한테는 그게 즐거운 놀이와 같은 거예요.
아마 너무 어리고 작은 신부를 맞아서 그랬겠죠. 아직 사랑의 감정에 대해 잘 모르는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와
가까워지는 방법이 같이 장난치며 노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게 평생 계속되면서 사랑과 삶에 활력을 주는 습관이 된 거죠.”
진 감독에게 “‘76년간 연인처럼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혹시 알아냈냐”고 물었다.
그는 “워낙 닭살스럽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분들이다. 젊을 때부터 그랬단다.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올 때 할머니가 마중 나가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안고 들어오고,
할머니가 TV 보다가 뭐 먹고 싶다고 혼잣말을 해도 할아버지가 당장 나가서 사온다고 하더라.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선지 자식들도 부부 사이가 다 좋다”고 했다.
진 감독에 따르면 이들의 비결은 사소한 것이다. 그는 “이분들이 하는 ‘뿌잉뿌잉’이나 ‘사랑해요’ 같은 애정 표현은
노인대학에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고마워요’라는 건 두 분이 예전부터 수시로 쓰는 말이다.
밥을 먹어서 고맙고, 화장실에 데려다줘서 고맙고, 마당을 쓸어줘서 고맙고”라고 했다. 첫 번째 비결은 ‘고마워요’인 셈이다.
돌멩이 하나 던진다고 탑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자잘한 것들이 평생 쌓여서 부부의 사랑이 완성된 것이다.
“외출하겠다고 하면 서로 머리를 빗겨주고 옷깃에 브로치를 꽂아주고,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서 놔줘요.
이 부부의 사랑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났던 글귀가 있어요.”
박노해 시인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다른 길>이라는 사진전을 할 때 벽에 적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
--- 출 처 : 조선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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