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炎天) /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진다
울음을 받아먹은 밭고랑 열무 바짝 약이 올랐다
상수리 그늘에 앉아 쓰르 쓰르
속 쓰려, 쓰려
혼자서는 속 쓰려 못산다고
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
이놈아 그만 울어!
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
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
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
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
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
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
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
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
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
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
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
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
독하긴 매한가지
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
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
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
열무같이 풋내 나던 시절이 있었던가
폭염 같은 세월에 쪼글쪼글 졸아붙은 할망구
생전에 영감도 못 본 엉덩이를 훌러덩 까고 앉아
밭고랑에 쫄쫄쫄 오줌을 눈다
오줌발에 발등이 젖은 참나무숲은
산그림자 따라 슬금슬금 콩밭으로 내려오고
쓰르……쓰르……쓰르…
호미 날에 울음이 뚝 잘렸다
해는 식어도 고랑 고랑 펄펄 끓고
하루치 울음을 퍼낸 뒷산이 적막하다
* 지심 - `풀(草)`의 전라도 사투리
** 콩밭짓거리 - 콩밭 고랑 사이에 심은 야채, 주로 김칫거리를 말함 .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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