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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사냥하다 / 정민기

덕 산 2024. 6. 20. 11:01

 

 

 

 

 

더위를 사냥하다 / 정민기 

 

마음도 장전하지 않고

더위를 사냥하러 나가고 있다

하늘의 살 같은 구름 몇

어깨춤이라도 추듯 두둥실 떠 있고

그늘 하나라도 선뜻

내어 주려는 나무가 믿음직스럽다

다시 눈길을 주어도 도저히

너는 관심조차 주질 않으니 말이다

입에서 어쩔 수 없이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잠깐 사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사랑

부드러운 감정 따윈 구름이라고

줄기차게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더위나 사냥하러 나간다

너의 마음을 구매해도 사은품 하나 없지만

사랑 그것 때문에

언제까지 울고불고할 수 없다

가지런하게 벗어 놓은 신발 바닥에서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져 빠져나온 발걸음

먹다 남긴 뼈다귀처럼 찍혀 있다

하늘에 나뭇가지 몇 드리워져

굽기라도 하는 듯

마음이 서서히 뜨거워지는데

해가 기울어지는 서쪽에 노을이 붉어져

산사의 부끄러운 범종 소리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더위가 포위하고 있다

뜨거울수록 몸을 배배 꼬는 사랑을 찾아서

집요한 모기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밤거리를 누비며

들뜬 분위기를 빼앗는 깡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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