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두 소방관의 죽음이 남긴 과제

덕 산 2024. 2. 9. 12:11

 

 

 

 

 

두 소방관의 죽음이 남긴 과제

 

한은예 2024-02-06 03:51:29

 

이 세상에서 그대들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목숨이 있을까요 ?

자신을 죽여서 타인을 살려야 한다고 누가 말했습니까 ,

그대들의 목숨이 타인의 목숨만도 못하다고 누가 말했습니까 ?

구해야 할 생명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미진함은 그대들을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

 

그 막중한 책임의 무게는  ‘사랑이었구나 ’ 생각해 봅니다 .

그대가 사랑하고 그대를 사랑하는 가족들은 오열하겠지요 , 그러나 그대의 가족은 그대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

그대의 정신은 남아있는 가족의 가슴속에서 살아가는 힘으로 후손이 이어갈 유산이 될 것입니다 .

진정으로 우리가 이어갈 정신은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 타인의 삶도 외면하지 못하는 정신입니다 .

 

타인의 삶을 죄며 , 자신의 삶에 타인의 꿈과 노력을 쏟아붓게 설계된 축문을 읽는 제사장은 이 모든 것이  “인민의 삶을 위해서 ”라며 세상의 눈을 가리고 축원합니다 .

‘타인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제단에 올려진 재물을 ,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는 정신 ’으로 살아가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아닙니다 .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계급투쟁 ’으로 피지배계급을 양산합니다 !

 

어느 작가가 말합니다 .

‘좀비 ’를 보면 애처롭기 그지없다고 연민을 감추지 못합니다 .

“저들도 배가 고파서 , 살기 위해서 먹을 것이 필요했을 뿐 ”이라며 동정심을 감추지 못하며 동조합니다 .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먹지 않고 생존하지 못합니다 . 내가 당장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허기가 눈앞의 음식이 내 것과 남의 것을 가릴 처지를 몰염치한 것이라고 치부할 때 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 바보짓이며 멍청한 짓이라고 서로를 격려할 것입니다 .

 

그러나 인간은 진보하면서 도덕을 배웁니다 . 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량을 아끼고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며 지키고 가족과 부족이 함께할 식량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웁니다 .

그렇지만 진보한 교육을 따르지 못하는 인간의 포악한 게으름은 배가 고프면 약탈을 합니다 .

매번 , “배고픔 ”을 앞세워  “게으름 ”이 하는 포악한  “약탈 ”을 정당화합니다 .

“잔인성 ”과  “게으름 ”을 엮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며  “천부인권 사관 ”을 역사화합니다 .

“천부인권 ”은 승화되지 않은 미분화된 생물학적 인간 본성에 근거를 댑니다 .

인간이 신을 닮아  ‘사랑 ’을 품고 태어나 ,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라는 신의 음성을 인간은 말초적 감각에 의지한 채 , 말초적 신경에 지배당할 때마다 잊어버립니다 .

단순한 생물인  “아메바 ”를 생명의 기저로 나태하고 나약한 먹이 사냥의 침략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 인간을 서글프게 하는 , 감추고 싶은 솔직함이 될 것입니다 .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은 신을 닮은 인간의 것입니다 .

진보는 단순하고 나태한 생물학적 기원으로부터 인간을 밀어내 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외침으로 다가가 인간다움을 물들입니다 .

어둠 속에서 휘청이는 정신은 빛을 갈구합니다 . 사랑의 빛입니다 .

인류애를 향하는 하나하나의 진정한 등불은 사랑입니다 .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 이웃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는 사랑입니다 .

그리고 젊은 두 소방관은 그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떠났습니다 .

그들은 신의 전령입니다 . 모든 사람이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 우리는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

신은 자유의지와 사랑을 주었지만 , 이기적인 인간은 이것을 빼앗아 자기 이익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진보 ’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를 사랑합니다 . 자유의지의 정신은 수호되어야 하며 ,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합니다 . 그 빛은 꺼지지 않는 불빛이며 인류애를 향하는 영원히 타오르는 빛입니다 .

“사랑의 빛 ”으로 신이 인간에게 전하는 선물입니다 .

두 소방관은 사랑을 전하고 떠났습니다 .

두 분은 신의 사랑을 전하는 전령사였습니다 .

 

그러므로 그분들을 위해서 천막을 짓고 리본을 흩날리며 밤낮으로 촛불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

신이 알고 , 자유의지와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기에 그러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상의 울부짖음에 냉정하고 냉철해야 합니다 .

희생은 강요당할 수 없으며 , 잔인성은 인격을 무너뜨리고 존재를 부정하며 이용합니다 .

우리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것과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에 선을 그어야 합니다 .

‘좀비 ’가 애처롭다고 동정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의 나태한 기생적인 속성에 끈을 대는 것입니다 . 타인을 이용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은 , 사랑을 이용하여 사랑으로 위장한 희생을 종용하며 복종을 강요합니다 .

 

아직도 노란 리본 배지를 떼지 못하는 국회의원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화마 속에 목숨을 내맡겨야 하는 소방관들이 더 좋은 성능을 가진 헬기와 소방장비를 구축해야 한다고 의원회관에서 연설해야 합니다 .

 

두 젊은 소방관과 같은 분이 더 많이 세월호에 승선하였다면 ,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은 없었을 것입니다 .

 

국회의원의 양복 깃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노란 리본배지 아래 , 두 젊은 소방관의 희생의 빛이 바래고 세속적인 각성에 의해서 , 두 분의 희생이 기억되지 않을지라도 , 우리는 이것을 가슴 아프게 여기지 않습니다 .

그들은 이미 우리 가슴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

그 정신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을 존중하는 신을 닮은 사람들의 부분으로 살아갑니다 . 그들은  ‘사랑의 빛 ’으로 우리 곁에서 호흡합니다 .

 

‘사랑의 빛 ’은 살아가는 힘입니다 .

두 분의 소방관은 세상에 삶의 의미를 되새겨 주셨습니다 .

우리에게 아름답게 살라고 합니다 !

어떤 사상가보다 , 어떤 이론가 • 학자보다 예술가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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