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는 것들
전에 살던 오두막으로 돌아오니
맨 먼저 내 일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찢겨진 창문이었다.
청설모가 빈집의 창문을 네댓 군데나 찢어 놓았다.
쥐나 다람쥐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유독 청설모란 녀석은 가끔 이런 심술을 부린다.
그래서 산짐승 중에서 이 녀석은 달갑지 않다.
사람이 사는 집에 창문이 찢겨 있으면
그 안에서 사는 사람까지 게으르고 궁상스럽게 보인다.
창문이 바로 그 집의 눈이기 때문이다.
찢긴 창문을 새로 발라보자.
먼저 밀가루로 풀을 쑤어 놓은 다음,
문을 돌쩌귀에서 벗겨 벽에 기대어 놓는다.
풀비로 창문에 물을 적시어 알맞게 불린 후
헌 창호지를 뜯어낸다.
창살을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낸 다음
그늘에서 물기를 말려야 한다.
이때 물기 있는 창문을 햇볕에 내놓으면
창틀이 뒤틀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창문이 마르는 동안 창호지를 마름질해야 하는데,
종이의 치수에 여유가 있으면
문풍지의 너비까지 고려해야 한다.
종이에 바를 풀의 농도는
너무 되거나 묽지 않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그리고 곁에 거드는 사람 없이 혼자서 하는 경우에는
종이에 풀을 바를 때 손으로 잡을 자리만은 풀칠을 하지 말고
종이를 제자리에 붙인 다음 문틀에 풀을 발라야
젖은 종이가 처질 염려가 없다.
종이를 바른 문짝은
햇볕에 말려 풀기를 제거해야 뒤탈이 없다.
그러나 가을철 햇볕이 강할 때는
너무 오랫동안 햇볕에 방치해 두면
종이의 이음매가 터지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문 바르는 일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은 것은,
그전에는 누구나 손수 해온 집안일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지금은 대개 유리문이 달린 집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는다.
절에서도 요즘 신참들은 도배사를 불러다 쓴다.
손수 할 줄도 모르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 같이 고전적인 중은
일찍부터 절에서 배우고 익혀왔기 때문에
지금도 손수 하고 있다.
혼자서 차분하게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투명할 수가 없다.
망상과 졸음으로 어설픈 참선을 몇 시간하는 것보다도
훨씬 성성하고 고요한 삼매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로써 공부를 삼음이고 마음 닦는 일이다.
다 마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밤과 새벽으로 쏙독새가
오두막 위로 날면서 ‘쏙독쏙독’ 울어댄다.
찌르레기도 온 골짝 안을 울리고,
어제 아침에는 검은 등 뻐꾸기도 찾아왔다.
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철새들,
그 신의가 미덥고 기특하며 고맙다.
사람들은 번번이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있어도
철새들은 결코 어기지 않는다.
이게 자연의 질서이고 순리이다.
빈집에서 겨울을 나느라고 무당벌레들이 많이도 생겼다.
무당벌레를 서양 사람들은 ‘레이디 벅 lady bug'이라 하는데
어째서 곤충에 숙녀의 호칭을 쓰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이런 숙녀는 스멀거려서 딱 질색이다.
산 아래서는 농약과 제초제 때문에
무당벌레들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러니 그놈들도 살아 남기위해서
독성이 없는 청정한 산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진딧물을 잡아먹는 익충으로 나와 있다.
오늘은 여름철에 입을 옷가지에 풀을 먹여 다렸다.
이런 일은 산중 생활의 한 일과다.
산중에서 살면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보고 솔바람 소리나 들으면서
신선처럼 한가롭게 사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는 일이 어디나 그렇듯이
크고 작은 일이 늘 따르게 마련이다.
창 바르고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이런 일이
곧 마음 닦는 수행이고 중노릇이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스승들도
도를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곳은 다행이,
정말 다행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궁벽한 곳이라
옷을 다릴 때는 내 식으로 다린다.
그 비법을 이 자리에서 공개해야겠다.
어디선가 나와 같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버려진 전기다리미를 주워다가 전선을 잘라내고
부탄가스버너에 불을 켜 다리미를 올려놓으면
열을 받아 가스 다리미 기능을 한다.
다리미가 무거운 것일수록 축열 효과가 좋아 잘 다려진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더니
궁하면 통하게 마련인 것 같다.
지난겨울부터
다시 하루 두 끼만 먹고 오후에는 먹지 않는다.
목이 마르면 생수를 마시거나 차를 마실 뿐이다.
예전부터 불교의 수행자들은 오후에 먹지 않았다.
오후에 먹지 않으면 마음도 한가하고 뱃속도 한가해서 좋다.
산중에서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은 번거롭다.
그리고 탐욕스럽게 여겨진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을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 일과를 대충 마치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 산중에는 믿음직한 몇몇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있으면,
청랭한 개울 물소리를 들을 때처럼
내 속이 트이면서 생각의 실마리가 풀린다.
소로우의 《월든》과 허균의 《한정록(閑情錄)》과
아메리카 인디언들,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과 조주선사가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고 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속이 더욱 깊어지고 투명해진다.
이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
나는 홀로 있어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그들은 나를 늘 깨어 있게 한다.
때로는 사는 즐거움이 꽃향기처럼 오두막에 번지는 것도
이런 친구들의 덕이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건 간에
좋은 친구를 통해 삶의 질서와 규범을 배우고 익히면서
인격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덧없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는가.
이제는 또 군불을 지피러 나갈 시간이 되었구나.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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