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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초(雜草)

덕 산 2012. 6. 25. 16:37

 

 

잡 초(雜草) 

        - 淸湖 이 철 우 -



엄동설한부터 연둣빛 꿈을 키우며

바깥세상에 들기를 고대한 배아胚芽가

초봄 어느 날 태양을 맞았는데

그 빛은 너무도 휘황찬란했고,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우주는 참으로 황홀했다


어느덧 五月이 월장越牆하니

민들레 홀씨 되어 여로에 들었고,

클로버는 행운 깃든 섬섬옥수를 흔든다


개망초도 가녀린 허리를 바람결에 비틀며

하얀 꽃송이로 화답하며 서 있고,

무명초들도 앞 다퉈 형형색색 화관을 쓰거나

신록으로 변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당긴다


새 세상에 든 지 겨우 백여 일 남짓

진녹색 꿈을 펼치지도 못했건만

엊그제는 인간들 등에 업힌 예초기刈草機라는 괴물이

잔인한 이빨을 드러낸 채, 왱왱 고함을 지르며

마치 전사라도 된 양, 화단 잡초들을 작살냈다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는 법

조연이 없다면 주연이 어찌 빛이 나리오

화초花草가 주연이면 잡초雜草는 조연이건만.... 

제집이라지만, 화초는 귀한 대접을 받고,

남의집살이 잡초는 얄궂게 희생양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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