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초(雜草)
- 淸湖 이 철 우 -
엄동설한부터 연둣빛 꿈을 키우며
바깥세상에 들기를 고대한 배아胚芽가
초봄 어느 날 태양을 맞았는데
그 빛은 너무도 휘황찬란했고,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우주는 참으로 황홀했다
어느덧 五月이 월장越牆하니
민들레 홀씨 되어 여로에 들었고,
클로버는 행운 깃든 섬섬옥수를 흔든다
개망초도 가녀린 허리를 바람결에 비틀며
하얀 꽃송이로 화답하며 서 있고,
무명초들도 앞 다퉈 형형색색 화관을 쓰거나
신록으로 변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당긴다
새 세상에 든 지 겨우 백여 일 남짓
진녹색 꿈을 펼치지도 못했건만
엊그제는 인간들 등에 업힌 예초기刈草機라는 괴물이
잔인한 이빨을 드러낸 채, 왱왱 고함을 지르며
마치 전사라도 된 양, 화단 잡초들을 작살냈다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는 법
조연이 없다면 주연이 어찌 빛이 나리오
화초花草가 주연이면 잡초雜草는 조연이건만....
제집이라지만, 화초는 귀한 대접을 받고,
남의집살이 잡초는 얄궂게 희생양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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