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 법정스님

덕 산 2023. 12. 11. 13:35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은 이엉이 덮이고

방에는 불이 켜졌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迷惑)도 벗어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은 드러나고

탐욕의 불은 꺼져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움막은 자신을 가리킴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들은 늪에 우거진 풀을 뜯어먹으며

비가 내려도 견뎌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졌다.

거센 물결에도 끄떡없이 건너

이미 저쪽 기슭[技岸]에 이르렀으니

이제 더는 뗏목이 소용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내 아내는

온순하고 음란하지 않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흡족합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해탈해 있다.

오랜 수행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것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다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평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뿌리소서."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그 누구의 고용인도 아니다.

스스로 얻은 것에 의해

온 세상을 거니노라.

남에게 고용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아직 길들지 않은 송아지도 있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있습니다.

새끼 밴 어미 소도 있고

암내 낸 암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은 대답하셨다.

"아직 길들지 않은 어린 소도 없고

젖을 먹는 송아지도 없다.

새끼 밴 어미 소도 없으며

암내 낸 암소도 없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소를 매놓은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자' 풀로 엮은 새밧줄은 잘 꾀어 있으니

송아지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은 대답하셨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 나는 덩굴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는 더 모태(母胎)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이때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검은 구름에서 비를 뿌리더니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다.

신께서 비를 뿌리는 것을 보고

다니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눈이 있는 이여*

우리는 당신께 귀의(歸依)하오니

스승이 되어주소서.

위대한 성자시여.

아내도 저도 순종하면서

행복하신 분 곁에서 청정한 행을 닦겠나이다.

그렇게 되면

생사의 윤회가 없는 피안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가리켜

'눈이 있는 이' 또는 '눈뜬 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때 악마 파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말미암아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데가 없는 사람은

기뻐할 건덕지도 없으리라."

 

스승은 대답하셨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말미암아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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