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606

시월에 핀 억새 평전平田 / 淸草배창호

시월에 핀 억새 평전平田 / 淸草배창호 산 능선, 은빛 모래톱이 출렁인다 깊어지는 가을 찬 서리에 가슴 졸이는 날밤이지만 이내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니 바람에 내맡긴 하얀 꽃무릇, 신들린 나부낌이 슬프도록 찬연하다 생을 다한다는 건 지극히 슬픈 일이지만 무한반복에 불과한 쳇바퀴인데도 집착이 없는 시작에서 걸림 없는 인연의 끝이라 해도 검붉게 여물은 가을 독백에서 그윽한 달빛을 마시는 느낌은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하마 바람도 따라갈 수 없는 이내 대궁으로 사위어 가면서도 발자국조차 읽을 수 없는 홀씨 된 마음,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뒤 남기고 눈꽃으로 핀 그리움일랑 바람에 띄웠으니 그래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아!

암연暗然(推敲) / 淸草배창호

암연暗然(推敲) / 淸草배창호 빛조차 종과 횡으로 거미줄 쳐진 도시의 안팎에 고단한 하루를 깨우는 파리한 각과 음습한 잿빛으로 공존하는 진상들이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기울어진 난파선이 썰물에 떠밀려 사상누각인 줄도 모르고 알박기하였으니 카톡의 알람처럼 쏟아지는 갈라치기는 방관과 묵인으로 저잣거리에서 술에 절어 헛 몸으로 늙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서둘러 가야 할 집이 없어 귀로에 나앉은 강둑의 허기진 모습들이 밤과 낮을 뒤집어 입고 다니는 쉬이 드러낼 수 없는 망상으로 그려졌어도 먹물을 뒤집어쓴 벽 앞에서 분에 넘치는 불야성不夜城이 제동장치 없는 마지노선이 아니길, 첨삭할 수 없는 창가에 달그림자 서린 댓잎 소리만 처량하다 끊임없이, 애당초 어그러진 바탕을 어이하랴 바람은 소리조차 남기지 않는데도 지평..

가을 불꽃놀이 / 淸草배창호

가을 불꽃놀이 / 淸草배창호 축제로 얼룩진 햇빛을 지고 나간 후 음각된 낮달을 옆구리에 낀 가을이 저만치 왔다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욕망으로 울긋불긋 심장까지 개봉하여 고백하는 불꽃처럼 일고 있는 행간마다 절절한 사연들이 차고 넘쳐서 저마다 달궈진 본연本然의 본능을 속물로만 여겼기에 뚝, 시침 떼고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 차마 몰랐습니다 골짜기마다 꽃 이리를 빗댄 노을이 다가올 석별을 예감하는데도 호젓한 단풍놀이의 포물선은 가지마다 가랑가랑 스며든 선들바람에 옷깃을 세웠으니 변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가을을 타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둠을 끌어당길 밤바다처럼 제 몸을 태우고 말 찬 서리가 우수憂愁의 결구를 늘어놓습니다

시월에 핀 억새 평전平田 / 淸草배창호

시월에 핀 억새 평전平田 / 淸草배창호 산 능선, 은빛 모래톱이 출렁인다 깊어지는 가을 찬 서리에 가슴 졸이는 날밤이지만 이내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니 바람에 내맡긴 하얀 꽃무릇, 신들린 나부낌이 슬프도록 찬연하다 생을 다한다는 건 지극히 슬픈 일이지만 무한반복에 불과한 쳇바퀴인데도 집착이 없는 시작에서 걸림 없는 인연의 끝이라 해도 검붉게 여물은 가을 독백에서 그윽한 달빛을 마시는 느낌은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하마 바람도 따라갈 수 없는 이내 대궁으로 사위어 가면서도 발자국조차 읽을 수 없는 홀씨 된 마음,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뒤 남기고 눈꽃으로 핀 그리움일랑 바람에 띄웠으니 그래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아!

가을 소곡(推敲) / 淸草배창호

가을 소곡(推敲) / 淸草배창호 해맑은 하늘이 그윽한 청자를 빚었다 고추잠자리 스산한 해거름인데도 구애가 한창 시시덕 휘지르지만 잠깐 머물다 갈 시절 인연 앞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몰랐다 빼어난 곡선은 아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그렇고 휘영청 별 무리가 외등처럼 걸려 있는 메밀밭 소금꽃이 그렇다 곰삭은 한때도 사위어 가는 데 어쩌랴 호젓한 네, 애써 바라다 꽃대궁으로 남아 서릿바람이 이내 거두어 갈지라도 달그림자 서린 댓 닢 소리만큼이나 깊은 그리움, 딱, 이만 치면 욕심이 아닌데도 들불처럼 혼신을 불어넣는 사색의 베갯머리에 뉘어 텅 빈 무심만 훠이훠이! 가을 앓이에 서늘한 그리움만 귀로에

시월의 하얀 구절초 / 淸草배창호

시월의 하얀 구절초 / 淸草배창호 소슬바람이 한 소절씩 지나칠 때면 취하도록 깊은 울림이라서 이 한철만의 산야에는 그윽한 운치가 눈만 흘겨도 지천으로 잔잔히 늘어놓고 있습니다 가히 절색은 아닌데도 오롯이 새벽이슬 머금은 채 티 내지 않아도 차마 삼킬 수 없는 고즈넉한 시월의 단상으로 고집스런 땡볕을 이겨낸 구절초! 성냥불 같은 노을로 일고 있는 산하에 서성거린 행간은 엄니의 하얀 옷고름처럼 눈길 닿는 곳마다 흉금 없는 회포를 풀어 넘치도록 아련하기만 한 연민입니다 밤과 낮의 조화에 내려앉은 상사화의 빈자리를 채우는 네, 가슴을 적시는 영혼을 다독이듯 갈바람에 상념에 젖은 향기의 사랑은 찬 서리에 시작은 이렇듯 애틋하고도 곱습니다

공허한 침묵 / 淸草배창호

공허한 침묵 / 淸草배창호 망막한 행간을 더듬다 신열을 앓아 고단한 잣대의 딱 그만큼 크기만 한 비율의 회오리 눈으로 부상한 8월, 시한 술, 행여 건질 수 있을까 싶어 기우뚱거려도 가슴과 머리가 따로 놀아 난해한 시류時流의 멍에에 이명을 앓고 있다 모난 말들은 정화의 터를 잡기까지 단선의 화통 열차처럼 회색빛 일색이고 분별조차 이분법의 쳇바퀴에 길든 한통속, 한여름 햇살에 잘 달구어진 구릿빛으로 아람일 듯 여문 조합의 잉태는 아직도 감감하니 빛바랜 세월만 너절하게 깔려있어 이 아니 슬프다 하지 않으리

가을 소곡(推敲) / 淸草배창호

가을 소곡(推敲) / 淸草배창호 해맑은 하늘이 그윽한 청자를 빚었다 고추잠자리 스산한 해거름인데도 구애가 한창 시시덕 휘지르지만 잠깐 머물다 갈 시절 인연 앞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몰랐다 빼어난 곡선은 아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그렇고 휘영청 별 무리가 외등처럼 걸려 있는 메밀밭 소금꽃이 그렇다 곰삭은 한때도 사위어 가는 데 어쩌랴 호젓한 네, 애써 바라다 꽃대궁으로 남아 서릿바람이 이내 거두어 갈지라도 달그림자 서린 댓 닢 소리만큼이나 깊은 그리움, 딱, 이만 치면 욕심이 아닌데도 들불처럼 혼신을 불어넣는 사색의 베갯머리에 뉘어 텅 빈 무심만 훠이훠이! 가을 앓이에 서늘한 그리움만 귀로에 든다

귀엣소리 / 淸草배창호

귀엣소리 / 淸草배창호 딱 그만치이더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기별도 없이 맞이한 이별의 예감이 산허리를 감고 있는 안개구름처럼 외로움이 지나간 자리마다 찔레꽃 향기 남실대는 산기슭 같아서 그렇게 땅거미 지듯 스며들 때까지 아련히 이슬 머금은 눈가에 재만 남은 숯검정 가슴은 차마, 안녕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지요 이미 기억에서 멀어진 지난 옛이야기지만 사시나무 떨었든 엄동을 뒤안길로 몰아붙인 보란 듯이 툭툭 불거진 꽃망울을 닮은 봄이 실금 같이 파동치는 엊그제만 같았는데 토혈을 쏟고 굴러가는 동백의 자지러지는 안부에 가슴 한켠이 문드러지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요? 하늘 아래 머무는 품을 수 없는 바다가 되었어도 봄비가 오는가 싶더니 천둥이 울어대는 장맛비가 지나가고 가랑비 내리는 가을이 오기까지 때 ..

백날의 염원을 피웁니다 / 淸草배창호

백날의 염원을 피웁니다 / 淸草배창호 신열을 앓고 있는 그렁한 눈망울로 밀물져 꽃을 지고 온 시절을 넘나든 바람이 들불처럼 번지듯이 지천을 흔들어 두런두런 붉게 타는 해거름 노을 소리 염천에도 필연의 까닭으로 다가온 한철의 네, 애끓음조차 곱디고와서 울먹울먹 뛰고 있는 고동 소리 눈길 닿는 곳마다 초승달 같은 미소는 바라만 봐도 괜시리 눈시울 붉히게 합니다 짙어진 초록이 무색하리만큼 천지도 분간 못 할 그리움 마구 쏟아내는 오롯한 귀티조차 차마 어쩌지 못해 초하에서 찬 이슬 내릴 때까지 피고 지기를 백날의 해후를 낳고 있습니다 네, 담담히 연리지를 꿈꾸기까지 애절한 번민에서 단호한 결별이라 여겼건만 밤 쏘낙 빗소리가 아리고 헛 몸의 까닭 모를 그림자가 되었을지라도 생에 네, 빈자리를 꽃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