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더 미루라
우리는 끊임없이 좋은 것, 넓은 것,
많은 것, 최고의 것을 찾는다.
필요하면 금방 교체한다.
주저함이란 용기 없는 행동이 되곤 한다.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 당장 구입하여 쓰면
감사한 마음도 들지 않고
얼마간 쓰다 보면 금방 익숙해져
처음의 즐거움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필요하면 곧 사서 쓰는 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복덕을 감소시키고
만물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의 마음을 소진시키는 일이다.
또 욕망과 아집, 이기를 키워나가는 아주 빠른 방법이다.
필요한 것을 당장 살 것이 아니라
조금 뒤로 미루고 내 안에서 얼마 만큼 간절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시간을 두고 살펴보라.
그렇게 살피고 또 살피다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날 때
여기저기 비교해보고 힘겹게 구하게 되면
감사와 고마움, 행복감이 밀물처럼 몰려올 것이다.
크고 좋은 것에 대한 적응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부채질하게 만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살 때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내 안에 숨쉬는 욕망을 잘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사야만하는
온갖 이유와 핑계거리들로 인해
무엇이든 휙휙 사서 쓰는 데 재미를 붙이게 될 것이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더라도 조금 더 미루었다가
꼭 필요할 때 어렵게 사서 쓰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아는 이의 마음에는
온갖 복이 깃들고 공덕이 쌓인다.
꼭 필요한 것이 있고 사서 쓸 여력이 된다면
구입해서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한번쯤 되짚어 보자.
욕망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인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을 고쳐서
조금 더 쓰고, 바꿔 쓰고 아껴 쓴다면
그리고 조금 불편하게, 조금 느리게,
좀 더 소박하게 산다면
필요한 시점을 조금 더 뒤로 미룰 수 있지 않을까.
한 며칠 몇달, 아니 몇 년 더 미루었다가
정말 꼭 필요할 때 조금 더 고민하다가
어렵게 지갑을 여는 것은 어떨까.
그 마음에는 모든 소유물들에 대한
감사와 행복을 넘어 경외로움까지 담겨 있다.
마음에 복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서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사람이 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우리 안에 복이 깃들기도 하고 복을 쫓기도 한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조금 더 기다려보라.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조금 더 뒤로 미뤄보라.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그때마다 손쉽게 사 먹는 일을 줄여보라.
그러는 가운데 복이 깃든다.
아름다운 옷을 갖고 싶더라도 바로 사기보다는
며칠 뒤로 미루면
그 시간만큼 천지신령과 화엄성중,
불보살님들에게 그 옷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좋은 음식을 하루 먹지 않고 미뤄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일 사든 오늘 사든 별 차이가 없다고 여기지 말라.
어차피 살 것이라 해도 될 수 있는 한 그 시기를 늦추고
갖고 싶은 욕망을 지켜보라.
사고 싶은 마음, 갖고 싶은 마음,
내 것으로 만들려는 바로 그 마음을 지켜보게 될 때
내 안에 숨겨진 욕망과 욕심 덩어리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에 알아차림의 힘이 더 커져
조금 더 깊고 넓게 지켜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그 마음속에 들어 있던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허망한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과 같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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