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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조동범

덕 산 2024. 1. 3. 10:31

 

 

 

 

1월 / 조동범  

​당신은 조금 더 늙었고, 이전의 것들은 모두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저물녘이 사라지려 할 때 어둠은 어느

곳을 배회하는가. ​그러나 당신은 남해의 섬을 바라보며

지나간 것들을 애써 호명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조금 더 늙었고, 신성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일몰은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해안선을 따라 씻기지 않는 피비린내는 누군가의 전생을 ​

​흐느끼려 하는가. 실패한 상륙작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무너진 다리마다 오래전에 사라진 

이들의 흐느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초등학교 교정의 텅 빈 그네와 ​침묵을 ​거듭하는

누군가의 동상을 떠올리려 한다.

 ​회고할 수 없는 과거만이 당신의 미래를 예감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회한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한다. ​

​세상은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하니 당신은 이제 조금 더

늙어버린 당신의 미래를 어루만지기로 한다. 

사이렌이 울리는 거리마다 국경일의 추모객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슬픔은 이제 쓸모없는 사랑처럼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당신은 조금 더 늙었으므로, 해안선의 출렁이는

​파도와 어둠이 장악하기 시작하는 수평선을 그저 바라볼뿐이다. ​

늙어가는 개와 산책하는 밤이 깊어가면 이웃들의

죽음은 어느새 당신 앞에 당도하는가. 

 ​몰락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금 더 늙어버린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끝도 없이 침묵하는 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아니면 말을 잊은 당신의 음성인가. 그러나

당신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한다. 

당신은 ​그저 조금 더 늙어갈 뿐이고, ​장례식장을 나서는 순간

잊히는 모든 슬픔처럼 과거와 미래는 떠올리지 않기로한다. 

 ​이별을 준비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익숙하다.

​이전의 모든 것들을 후회하지 않기로 한 당신의 다짐

역시 매일 밤 유효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고요하고

거룩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오늘밤은 당도할 것이다.

​그곳에는 어느새 조금 더 늙어버린 당신이 있다. ​

연인의 손을 잡고, ​그 무엇도 후회하지 않는, 당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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