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합방(合邦)과 병탄(倂呑)

덕 산 2016. 9. 6. 11:50

 

 

 

 

 

 

 

 

윤영노(rho***) 2016.09.03 01:26:41

 

815일을 우린 광복절(光復節)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빛을 되찾은 날' 정도일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815일 이전, 즉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는 암흑기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선에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강변하는 일본의 입장에선 껄끄러운 용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날을 종전 기념일 또는 종전일(終戰日)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전쟁이 끝난 날'이다. 전쟁이 끝난 이유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전쟁이 끝난 건

사실이니까 틀린 표현이라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에 이겼어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아마 전쟁에서 이겼다면 '전승절'이나 '대미승전기념일' 등등 승리를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종전일'은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애써 외면한, 즉 패배했지만 패배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을 교묘하게 희석시킨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은 그럴싸하고 모호한 용어를 만들어내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

19세기 중후반기부터 밀물처럼 들어온 서양문물을 지칭하는 용어의 대부분은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통령, 정부, 국회, 민주주의,

수학, 은행, 철학, 야구, 축구, 낭만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829일을 우린 국치일(國恥日)이라고 부른다. '한 나라로서 부끄러운 날'이란 의미이고,

 광복절의 반대 개념인 암흑기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1910829일에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을 '한일병합조약'이라 부르고,

흔히 '한일합방'이라고도 한다. 우리에겐 '나라를 빼앗겼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지만,

사전적 의미는 '두 나라가 호혜적 입장에서 대등한 조건으로

한 나라로 합쳐졌다'라는 합법적인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지금도 일본 정부는 1910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을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 라고 공식적으로 강변하고 있다.

이등박문이 한 나라의 총리인 이완용에게 내각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하고,

회의석상에선 총리인 이완용을 제치고 한국의 각료들에게 직접 지시를 하고,

한국의 각료는 굽신거리며 이등박문의 지시를 받는 '코미디'는 애써 외면한 채 기록으로

남아있는 자료만으로 적법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일본은 자신들의 패전을 종전(終戰)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희석시키는 재주를 부리고 있다.

합방이나 병합이란 용어도 '종전(終戰)'이란 말처럼 자신들이 강제적으로 한국을 먹어치운 게

아니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교묘한 말장난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이 불법적으로 한국을 먹어치운게 아닌 호혜적이고 합법적인 통합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말이 '합방'또는 '병합'이다. 우리는 '합방'이나 '병합' 대신 강제로 병합했다는

의미의 '강제병합'이나, 먹어치웠다는 의미의 병탄(倂呑)이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

일본의 입장을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합방이나 병합이란 말을

우리가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의 입장을 인정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반응형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만큼 진한 우정을 베풀고 강남가듯 가버린 친구들  (0) 2016.09.19
잃어버린 9월 / 이호택  (0) 2016.09.08
가을을 반기며  (0) 2016.08.25
숨어서 오는 가을  (0) 2016.08.11
노후 준비의 함정  (0) 201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