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피만큼 진한 우정을 베풀고 강남가듯 가버린 친구들

덕 산 2016. 9. 19. 16:36







김환태(gue***) 2016.09.18 11:59:38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포함하여 특유의 사유력을 지닌 고등동물인 인간 모두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는 생노병사의 형태이든 병들지 아니했는데도 벼락을 맞든 교통사고 등

각종사고,칼에 찔리든 총에 맞든 떨어져 죽든 찰라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생명이 끊어지는 이른바

비명횡사를 당해 이승을 하직하는 생노횡사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인간이 이땅에 출현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죽지않고 장생불사를 누린 인간은 단 한사람도 없다.

역발산기개세 천하장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초를 구해

늙지 않고 영생을 누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저 세상으로 갔다.


예수 그리스도,석가모니 부처님,마호메트,공자,맹자 등 천하 이치를 꿰뚫었다는 성인,성현들도 끝내

염라대왕의 저승행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18만년을 장수했다는 삼천갑자 동박삭이도 고인이 되었다.

부귀공명을 누린 강호제현들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강호필부들이야 두말할것도 없다.


이처럼 목숨이 붙어있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는 것은 만고불변의 자연법칙이요 진리인 것이다.

이와같이 태어나면 죽는건 당연한데도 스스로 살기싫어 목숨을 끊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철저한 생존본능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앞에 초연한 감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부모형제,친구,이웃들이 건강히 오래 살기를 빌고 절대자를 향해 축원하길 마다하지 않는 것은 모두 이와같은

생존본능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자신과 인연이 있는 모든이들이 젊어 요절하든 늙어 병들어

자연사하든 죽음을 맞게되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며 저승에서나마 이승에서 못다 누린 복락을

누리도록 영면을 기원하는건 인지상정이다.


필자도 두해에 걸쳐 아주 가까운 절친한 친구 두 사람이 연이어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필설로 형언키

어려울만큼 북받쳐 오르는 슬픈 감정을 억누르기가 어렵다.추석을 맞아서 그래서인지 더욱 그러한 감정이 배가되는것 같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들을 한다. 어렵고 힘들때 끌어주고 밀어주고 도와주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기댈 언덕은 가족,피붙이 밖에 없다는 혈육지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달리 피붙이라고는 하지만 남보다

못하거나 더 나아가 원수보다 더한 경우도 없지 않다.








가족간 화합하지 못하고 불화와 반목을 서슴지 않는 집안이 이외로 많다.재산을 두고 형제간에 싸우고

부모 자식이 원수처럼 지내거나 죽고 죽이는 골육상쟁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볼장다본 망해가는

집구석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물보다 형편없는 진한피다.


이처럼 물보다 못한 진한 피처럼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친 혈육보다 나은 친구,동료,선후배 들이 많다.

믿음과 의리, 정으로 맺어진 우정은 어지간한 진한피보다 더 낫다. 이미 고인이된 필자의 친구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나 한다.


비록 남남이지만 피를 나눈 혈육못지 않은 우정을 나누어 왔다. 필자와 중고등학교 동창들인 두 사람은 군대를

다녀와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후 지방직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멸사봉공의 자세로 공직을 수행해 왔다.

능력 자질 모두 뛰어난 지방행정 전문가들이었다.


두 해 전 먼저 세상을 뜬 친구는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면장으로 직무를 수행한지 일년 조금 넘어 세상을 버렸다.

면장으로 나간지 몇달만에 친구가 의욕에 넘친 목소리로 말을 주고 받은후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일체 응답이 없어 초임 면장으로서 의욕적으로 일을 하나보디

바빠 전화할 시간이 없나보다고 체념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0개월이 흐를 즈음 며칠전 작고한 친구에게 왜 전화도 문자도 안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보기에는

별 이상이 없는것 같은데 어디가 안좋은지 오전에 면사무소에 출근하여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에는 자택에서

건강관리를 하는것 같다고 하였다.그러면서 모든 사람들과 일체 연락을 끊은 상태이니 시골 내려오면

면사무소로 찾아가 보라 하기에 그렇게 하려 하였는데 이번에 세상을 버린 친구가 그친구의 운명소식을 알려 준 것이다.


평소 건강이 좋았던 친구는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췌장암 소견이 나오자마자 지인들과

일체의 연락을 끊음은 물론 그 누구도 병문안을 이유로 찾아오는것을 허용치 않았다고 한다.

강한 자존심 때문에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것 같다.








그 친구가 서울 큰 병원에도 입원했을 때도 필자는 전혀 몰랐다. 그토록 무정했던 친구가 운명하기 사흘전에

나에 대해 말을 하더라는 친구 가족을 말을 들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친구가 그토록 병마에 시달리다

운명하기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죄책감,떠나간 친구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운명의 신은

남아있는 친구에게 손을 뻗쳤다.


먼저 간 친구의 부음을 안겨주었던 친구마저 끝내 운명의 신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며칠전 세상을 떳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한동안 할말을 찾지 못했다. 새벽1시 40분과 새벽 4시에 친구의 휴대폰을 통해 보내온

"부친이 작고하셨습니다"라는 문자를 보고 친구의 부친께서 별세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가 오전 9시30분께

 세번째 부고 메시지를 보고 깜짝놀랐다.


친구의 아들이 친구의 휴대폰으로 친구가 운명하였다며 장례식장과 발인 날짜를 보내와 친구의 부친이

아닌 친구가 세상을 떳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이번에 세상을 뜬 친구도 술담배도 하지 않을만큼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만큼 겉으로 보기엔 매우 건강했다.


먼저간 친구와 함께 지방직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명예퇴직 신청자에게 주어지는 1년간의 사회복귀 준비기간을

보내던중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몇달 전 통화 할때만해도 지역역사 문화 전문가 답게 정식 퇴임하면 지역역사,

문화유산을 정리한 책을 쓰기위해 자료을 모으고 도서관에서 관련 분야 공부를 하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는데 운명하였다니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달려 내려간 빈소에서 웃음 띤 모습으로 맞은 친구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친구의 작고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는 심혈관질환으로 이승을 하직했다고 한다.공직 생활동안 정기적인 건강검진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심혈관 질환이 갑자기 찾아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급거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정말검사 결과 복합 발병

증세를 보이는 바람에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환갑 나이에 세상을 떠버린 이 친구도 먼저간 친구처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였으면서 지척에 있는 필자에게

일체 투병사실을 알리지 않고 나홀로 남겨두고 가버린 것이다. 왜 그렇게 무심,무정하게 무엇이 급하다고

그리 서둘러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먼저간 친구처럼 남의일로 여겼던 질병, 곧 죽음을 의미한 불치병이 찾아온데 대한 분노와 허탈감 병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자존심, 걱정을 끼쳐 주지않고 조용히 가는게 친구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있지만 친구따라 저승간다는 말은 없는데 따라올 친구를 생각지 아니하고

먼저가고 따라갈 일이 아닌데도 친구찾아 저승으로 갔는지 살아남은 필자에겐 야속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이다.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친구들은 필자가 돈하고는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일을 고집스레 붙들고

있는데도 쓴소리를 하기는 커녕 격려와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고향에 내려갈라치면 만사에

제쳐놓고 달려나와 잘 먹고 건강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면서 몸에 좋다는 값비 싼 음식만 골라먹이고

상경할때까지 늘 함께 해주었다.


차별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정의로운 좋은세상을 만드는데 밀알이 되겠다는 의지가 무색할 정도로 제자리

뛰기만 하는데도 세상에는 너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던 친구들이었다.

특히 먼저간 친구는 필자가 경제관념이 희박할 만큼 칠칠치 못한탓에 큰 피해를 당해 곤경에 빠진 사실을 알고

밤열차를 타고 올라와 아무말없이 돈을 건네주고 바로 하행열차를 갈아타고 내려가 출근하길 여러차례할

정도로 호위,보호전사 노릇을 기꺼이 하였다. 그러면서도 필자가 미안해 하면 "내것이 네것이고 네것이 내것이다.

네가 하는일만 하면 된다. 다른말은 일체하지 마라"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곤 했다.


사심을 초월해 주기만 한 우정에 대한 보답은 딴 정신 팔지않고 외길을 걷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해 왔다.

얼마 후 마무리할 때가 되면 점찍어 둔 고향 개울가 언덕배기에 컨테이너든 오두막이든 마련하여 서로

떨어져 못다 나눈 우정을 누리려 했건만 나홀로 남겨놓고 가버렸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육십 청춘이라는 시대에 파란만장한 인생사로 녹여낸 정신적 인간적 청춘을 누려보지 못하고 60문턱에서

운명의 손을 들어버린 친구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운명론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꼭 그렇게 데려가야 했고 가야만 했는지 염라대왕과 친구들이 야속하기 짝이없다. 비록 갔지만 저승에서라도

이승에서 못다한 우정을 누리며 영면하길 빌고 빈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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