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과장된 미래는 없다.

덕 산 2024. 5. 25. 09:47

 

 

 

 

 

과장된 미래는 없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언제나 ‘과거’에 묶여 있으며
관심의 초점은 언제나 ‘미래’에 가 있다.
생각은 늘 과거의 연장이며
우리의 기대는 늘 미래를 꿈꾼다.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아름답고도 찬란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가
언젠가는 내 앞에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성공이나 부나 명성이나 지위일 수도 있고
혹은 여행이나 사랑이나 안정감일 수도 있다.
또 더 멀리 본다면 안정적이고 부유한 노후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 있을 소풍이나 여행을 기다리며 부풀어 있을 수도 있고,
주말에 있을 미팅이나 데이트를 꿈꿀 수도 있으며,
이번 휴가 때 있을 해외여행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아주 가깝게는
2~3분 뒤에 도착할 버스를 기다릴 수도 있고,
5분 뒤에 있을 쉬는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으며,
10분 뒤에 있을 점심 시간을 기다리거나
30분 쯤 뒤에 있을 퇴근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다.

심지어 그렇게 기다리던 주말 단풍놀이를 갔다가도
아름답게 피어난 오색 단풍을 즐기다 말고
빨리 집에 돌아가 편히 쉬며 좋아하는 TV 프로를 보려고 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기다려 오던 주말 산행을 가면서도
오를 때는 빨리 정상에 도착하기를 기대하고,
정상에 도착해서는 빨리 내려가 집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이쯤되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다림은
병적이고 자동적이며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진정으로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 어떤 과장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그렇게 꿈꾸던 바로 그 흥분되는 미래가
막상 현실로 되었을 때는 어떤가?
과연 내 상상 속의 그 미래가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환상적으로 펼쳐지는가?
대개 그렇지 못하다.

생각과 상상과 계획 속에서 꿈꿔오던 그 부푼 미래가
현실이 되는 순간,
그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바뀐다.
그리고 현실은 우리에게 별다른 매력이 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우리는 미래 그 자체를 진정으로 기다린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 즐기고 만끽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며,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서툰 것이다.

그렇게 부풀어지고 과장되어 있던 미래의 기대가
현실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평범하며
맹물처럼 밍숭맹숭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심지어 대단한 성취나, 너무도 간절했던 바람이나,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순간 조차
잠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흥분할 뿐
그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다시 별반 다를 것 없는 현실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꿈꾼다.

 

 

 

 

 

 

미래는 언제나 부풀려 져 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할 때
그 생각과 상상은 현실이 아닌 단지 사고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사고와 생각은 현실을 왜곡한다.
현실을 과장한다.

현실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일 뿐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재는
말 그대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평범하다.

물론 그 평범한 현재 속에
깊은 비범함이 숨겨져 있지만,
우리는 그 뒤에 감춰진
현실의 깊은 심연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 채
겉에 드러난 평범함에 실망하고 만다.

옛 선사들은
‘평범함이야 말로 가장 큰 도’라고 했고,
‘지금 여기의 현재야말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순간’
이라고 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미래에 속으면서도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또 다른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것은 거의 병적이거나 장애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생 동안 매번 속지만 늘 그것을 잊고
또 다시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만 할 뿐,
죽기 직전까지도 ‘지금 여기’의 현재에 머물러
깨어있는 현존을 누려보지 못한다.

 

 

 

 

 

 

현재 그 자체가 초라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를 무시함으로써
현재가 그 빛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우리의 삶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니까.
그렇게 꿈꾸고 기다리며 설레여 했던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
그것은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삶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 삶은 언제까지고 희뿌옇고 빛을 잃으며
그저 그럴 수밖에 없다.

 

...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부풀려지고 과장된 미래를 분명히 보라.
분명 그것은 과장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생각이고 사고일 뿐이다.

완전히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라.
완전히 지금 여기를 즐기라.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라.
지금 이 자리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클라이막스다.

내가 그렇게 꿈꿔오던 모든 것이 성취되는 순간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이 말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 모든 순간은
사실 바로 ‘지금’에 있다.
그 어떤 순간도 기다릴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살고, 얼마나 깨어있느냐에 따라
그 기초 위에 모든 미래는 펼쳐지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모든 미래는 나온다.

그렇기에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다림은 언제나 거짓을 양산해 낸다.
기다림은 언제나 실패와 좌절로 끝날 뿐이다.

 

 

 

 

 

 

매 순간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라.
지금 여기의 삶을 다만 지켜보라.

그랬을 때
본래적인 삶의 신비와 접촉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것이며,
경이로운 것인지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과장되고 부풀려진 미래 대신
그 자리에 차분하고도 평온하며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이라는 신비가 들어 차게 된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행복하라.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평화로우라.

그랬을 때
본래적인 삶의 신비와 접촉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것이며,
경이로운 것인지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과장되고 부풀려진 미래 대신
그 자리에 차분하고도 평온하며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이라는 신비가 들어 차게 된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행복하라.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평화로우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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