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 나라
김홍우(khw***) 2019-05-22 15:42:08
“야 여기는 완전히 둥글레 나라네요.”
원래는 수 년 전 교회 마당 한 쪽에 서너 포기가 자생적으로 나와 있었는데 몇 년 지내는 동안에 약 100개 이상 되는
모양으로 번식을 하여 지금도 저렇게 하얀 초롱을 닮은 꽃들을(!) 쪼르르 매달고 나란히 서있는 둥글레 들과
그 꽃들을 바라보시면서 우리 교회 권사님이 하신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빙긋이 웃었는데 왜냐하면
그 권사님은 분명히 ‘둥글레 밭’이라고 하지 않고 ‘둥글레 나라’라고 하셨고 그때의 그 말과 표정에서
아직도 놓치지 않고 있는 동심의 모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꽃이라든가 풀이라도 한 종류로 많이 모여 있으면 ‘꽃밭’ ‘쑥밭’.. ‘메밀꽃밭’ 하는 이름들을
붙여 부릅니다. ‘꽃나라’ ‘쑥나라’라고 하는 경우는.. 혹 있을까..? 아무튼 거의 듣기 힘든 말인 것 같은데
권사님을 통하여서 듣게 되는군요. 그 권사님은 ‘밭’을 나라로, 거기에 피어있는 둥글레 들을 ‘백성’으로 보셨던 것이지요.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던 동심의 마음이 발동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의 눈에는 갑자기
소녀시절 고무줄놀이를 하는 권사님의 모습이 떠올려졌습니다. 허허.
그렇습니다. 비록 이제는 세상에 속고 시달리며 살아오기를 거듭한 어른 된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그 마음속
깊은 어느 한 곳에는 결코 지워지지 아니하는 동심의 모양 한 조각이 작게라도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른들도 웃으면서 장난도 치고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아이 같은 말 표현을 하기도 하고 언뜻 언뜻
어린아이의 표정을 짓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참 좋은 일입니다. 몸이 어른이 되었다고 마음도 그렇듯 나이든
모습으로만 진행의 방향과 가닥을 잡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굳고 메마르고 웃음이 없는 사회가 되겠습니까..
“여기는 완전히 둥글레 밭이 되었구먼..” 하는 것과
“여기는 완전히 둥글레 나라네요.” 하는 말의 차이는 그래서 소중한 것의 발견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오직 눈앞에 드러난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거기에 작고 여린 무지갯빛
꿈의 모습을 하나 더 담고 실은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휴.. 그래요 이제는 손자들이 줄줄이 있는 연세이시지만
그래도 마당 한 편에 둥글레 꽃들이 오그르르 모여 피어있는 모양을 바라보면서 ‘둥글레 밭’ 아닌 ‘둥글레 나라’를
떠올리는 마음은 분명히 아직까지 사라지지 아니하고 깊은 곳에 담겨 있던 동심의 여전한 발로이며 소싯적
어린 마음을 아직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모습이라서 인상 깊고 재미있고 또 그래..
하면서 깊은 호흡으로 삶을 배우게도 됩니다.
그러한 동심의 시선으로 본다면 진달래 숲은 진달래 나라.. 개나리가 많으면 개나리 나라.. 우리 교회 같이 소나무가
빙 둘러져 있으면 소나무 나라.. 마당 가운데 둥근 화단에는 철쭉이 많으니까 철쭉나라.. 그 마당을 부지런히
가로지르는 개미들의 땅속 거처는 개미나라.. 그렇다면 이러한 비약은 어떨까요.. 우리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니까
성도나라.. 은혜가 가득하니까 은혜나라.. 화목하니까 화목한 나라.. 허허 흐뭇한 마음이 되니 또한 약간은 들뜬
마음이 되어 마구 마구 비약을 해 보았습니다. 혹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그러한 모양의 나라들의 모양과 모습들이 자꾸만 더 되어 가도록 열심을 내면 되는 것이니까요..
또 ‘둥글레’라는 이름을 들으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둥글게’라고 하는 말이며 그것을 그대로 노래 제목으로
삼은 동요 ‘둥글게 둥글게’입니다. 다 함께 한 곳에 모여서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지요. 여기에 붙여진 곡도 훌륭하고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지고 있는
즐겁고 재미있으면서도 동심의 아름다움이 푸근하게 겸비된 수작 동요입니다.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랄랄랄라 즐거웁게 춤추자
중얼중얼 입속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바라보니 마치 저 둥글레 풀잎 줄기를 따라 쪼르르르 매달려 있는 하얀 초롱모양의
꽃들이 서로 서로 손을 붙잡은 어린 아이들처럼 보이는군요.. 우리 권사님도 둥글레 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러한 모양을 연상하신 것일까요..
우리 어른 된 모든 사람들이 작고 조그맣게 라도 동심의 모양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래서 언제라도 꺼내어
서로에게 보여주며 빙긋이 웃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강팍함과 살벌함과 이기의 모습들이 많이 희석되고 또
줄어들게 될 텐데.. 그래요.. 맞아요 그리고 그렇습니다. 어른 된 우리들이 잊고 사는 동심의 모양들은 유치한 것이
아님은 물론 여전히 나의 현재와 우리들의 현재 속에 꼭 필요한 삶의 요소들인 것입니다. 이 동심의 마음을
망가뜨리고야 말겠다고 자꾸만 더해오는 세상의 공격 속에서도 동심의 순수함과 순전함을 여전히 잃지 않고
굳게 지키며 살아가는 복 된 이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산골어부 2019522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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