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9-05-22 12:15:48
한 사람을 가장 험하고 비참한 모양으로 업신여겨 말하는 것이 바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즉 필요가 닿는 곳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으로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멸시의 말인데 존재
그 자체가 부정되어지는 말이기에 저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말은 사람 아닌 어떤 한
사물을 가리킬 때도 자주 사용되어 지곤 하는데 역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로서입니다.
아무짝 즉 아무 곳에도 사용되어질 곳이 없으니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에서
늘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자리와 상황 속 주권자의 눈엣 가시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없어지기를’바라고 또 ‘없애버리기’도 합니다. 물건 같으면 쓰레기 취급을 받으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짐을 당하든가 하며 사람 같으면 미움을 받고 쫓겨남을 당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경우와
모양들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쓸모가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내가 먹을 것을 축내고 있으니까..
즉 다시는 회복시킬 수 없는 존재와 생명의 소중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경제계산 유무익 선상에서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곧 일도 없이 ‘먹기만 하는 입’을 하나라도 줄여서 내 몫의 안전과 더함에
보탬을 주려는 험하고 인정머리 없는 발상과 실행을 인류는 계속하여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도 사물도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 고유의 용도를 가지고
태어나고 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라고 비하하여 취급하게 되는
이유는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즉 국가의 유익이라든가 사회의 정의적
시각에서 내려지는 심사와 판단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 쓸모없고 거리적 거리며 무엇이든지 나의 소유 된 것을
곧 돈, 수고, 땀, 등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에서 내려지는 구분이며 정죄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곳에도
쓰임이 되지 않기에 가만히 있어 숨 쉬는 모양만으로도 나의 손해를 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말 ‘아무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곧 ‘아무 방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짝이 될 것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인데 사실은 ‘아직은 찾지 못한’ 모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칼이 자르거나 베일 것을 찾지 못하거나
또는 없거나 하는 경우와 같은 것으로 만약 씻을 것이 없다면 비누가 무용지물이고 먹는 입이 없다면 산해진미
차림상도 역시 그렇습니다. 쥐고 잡고 힘쓸 일이 없다면 손의 용도는 무엇이겠으며 볼 것도 볼 일도 없다면
눈의 용도 역시 그러하여서 곧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두더지는 눈을 있지만 ‘볼 일’이 없기에
시력은 0이라고 합니다. 용처가 없기에 폐기 된 것 퇴화(退化)된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꾼을 구할 때도 ‘쓸모 있는 사람’만을 얻기 위하여 애써 구분하고 심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의 사회에서 그 대부분의 모양은 국가나 사회의 유익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역시
‘나의 이익과 유익’을 위하여서입니다. 오히려 나에게만 이익과 유익이 된다면 어지간한 사회악 같은 것은
용납하려고 하는 경향을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통딱지를 떼는 현장에서 지폐 몇 장을
내밀어 주고받는 불법의 모양과 자행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곤란과 손해를 해결 하려는 모습 같은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고무신도 짝이 있고 젓가락도 짝이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무엇이든 ‘짝’이 있어야 용도가
생기고 존재의 가치를 발하게 된다는 말인데 과연 그렇습니다. 특히 고무신이나 젓가락을 서민적이거나 일상의
도구를 예로 든 것은 그것들의 흔함과 자칫 멸시 받고 쉽고 가볍게 취급 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입니다.
즉 싸고 흔하고 별 가치 없어 보이기에 한 쪽에 내 던져 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짝’ 곧 ‘짝꿍’을
만나게 되면 유용하고 가치 있게 사용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붕붕 버스를 타고 백운대로 등산을 가서 낑낑 힘들게
깔딱 고개를 올라 널찍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밥을 해먹는 와중이라서 각자의 산만함 때문에 그랬겠지요.
제 손에 쥐어진 젓가락이 한 짝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밥은 다 되었고 감자와 양파 그리고 고추장을 넣은
‘등산찌게’는 끓고 있고.. 할 수 없이 근처 나무로 다가가 그 가지들 중에서 가장 모양도 사이즈도 내가 가진
젓가락과 비슷한 것을 골라 꺾어서 모자란 짝을 대신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얼마나 불편하던지 오직 입으로
담아 넣고 집어넣는 모양에만 맞추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 남아 있게는
되었습니다만 아무튼 그때 ‘제대로 된 짝’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젓가락 짝을 찾는 일을 가지고 ‘상대성이론’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이 세상 무엇이라도 제대로 된 짝
나에게 어울리고 접합한 상대를 찾지 못하면 그 자신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멸시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짝을 찾아 결혼도 하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도 부지런히 하는 것이지요. 마치 ‘건강한
두 다리’와도 같습니다. 한 쪽 다리가 없거나 또는 다쳤거나 하였다면 필히 목발이나 의족 즉 ‘가짜 다리’를 만들어
옆에 세워서 그 없는 다리의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인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에게 원래 주어진 다리보다
나는 것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무신도 짝이 있다’는 말은 그 제대로 된 나의 짝을 부지런히 찾으라는 채근과 종용에 다름이 아닙니다.
한 쪽은 고무신을 신었는데 다른 한 쪽은 구두를 신는다든가 혹은 운동화 슬리퍼 등 어떠한 것으로 대신하려고
용도를 맞추어 보아도 그 불편함과 비효율성은 자꾸만 더 두드러지기만 계속 할 뿐 결코 원래의 짝처럼 되어
질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런가.. 예전 어르신들이 당신의 과년한 딸들에게 흔히 하시던 말씀 중에 “여자는
그저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것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남자와는
또 다른 여자의 의존적 성향과 삶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분명합니다.
남자 역시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잘 만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남녀가 서로 처음 대면하게 되면 먼저 받게 되는 상대의 인상이 있고 대부분은 외모가 잘생긴 미남 미녀에 먼저 혹 합니다.
그리고는 건강의 상태와 학식의 정도 현재의 직업 등등을 놓고 저울질 하여 보면서 ‘나에게 맞는 짝인지’를 가늠하여
보게 되지요. 그러나 또한 그렇게 하여 모든 것이 내 맘에 흡족한 경우로 맞이하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바로 ‘행복한 부부의 일생’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은
그렇게 시작한 짝꿍의 삶 속에서 말도 행동도 성격도 부단히 맞추어가야 하는 힘듦과 어려움 속에서도 오래 참고
인내하며 양보하고 이해하기를 거듭 할 때에서야 비로써 그 복 됨과 행복의 근사치에 겨우 다다르게 되는 것이지요.
혹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또는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본 적이 혹시라도
있습니까? 사실 이 혹독한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어린 자식들의 잘못을 나무라고 책망하는 부모들이라고 합니다.
단단히 화가 나고 또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른 쪽이든 아이 쪽이든 아직은 제대로 된 짝을
찾지 못한 상태임을 냉정하고 사리 있게 인지하고 분별하는 것으로 그렇듯 쉽게 발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나를 ‘발휘할’ 때도 장소도 아직 만나지 못한 것으로서 한 쪽 날개만 푸드덕 거리는 모양은 과연 실수만 거듭하게
되는 것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모양이 될 수도 있지만, 두 날개가 함께 푸드덕 거릴 때에는
저 푸른 하늘로 높고 높게 솟구쳐 오를 수 있는 것이기에
혹 지금의 나의 모양이 그렇듯 ‘아무짝’을 찾지 못한 모양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더욱 힘쓰고 애쓰며 눈을 밝혀서
나의 짝, 나의 날개, 나의 고무신 한 짝을 속히 찾아내어야만 합니다. 인생의 행복과 존재의 가치가 거기에서
생겨지고 빛나게 되기 때문이지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아무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일에 유용하게 쓰임을 받으며
좌중의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두말할 필요도 없은즉, 어서 빨리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어울리는 사람,
일, 취미 그리고 모임과 무리를 찾아내는 지혜롭고 행복한 이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산골어부 2019522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진리를 찾아서 (0) | 2019.05.28 |
|---|---|
| 둥글레 나라 (0) | 2019.05.24 |
| 노화와 노쇠는 다르다. (0) | 2019.05.21 |
| 어버이날에 돌아보니 (0) | 2019.05.16 |
| 먹고 살 걱정 없다.. (0) | 2019.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