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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후 / 고 은

덕 산 2025. 10. 7. 15:57

 

 

 

 

추석 이후 / 고 은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을 없이

어찌 내가 있겠습니까

가을날 산과 들 제 모습 드러내고

흐르는 것 졸래졸래

온갖 탐욕 다 내버리고 있습니다

어디에 이만한 종교가 있겠습니까

이만한 사상이 있겠습니까

아버지 감사합니다

훨훨 나는 철새들에게도

다 내 고향인 이 가을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듬모듬 마을마다 붉은 고추 널고

그것을 일러 태양초라 합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

곡식 널어

어디 그 길로

함부로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오미자 익고

풋콩 청국장 띄워

저녁 냉갈 자욱이 끼어오를 때

여기에 아들이고자 딸이고자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꾸 사라져가는 마을

여기에 한사코 남아 있는 아름다움이여

들밥 인심 항상 넉넉하고

집집마다 싸운 뒤로도

서로 술과 국수 나눠먹는 정

정이 법보다 높은 곳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의 가을 없이

어찌 내가 있겠습니까

내 자식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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