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후 / 고 은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을 없이
어찌 내가 있겠습니까
가을날 산과 들 제 모습 드러내고
흐르는 것 졸래졸래
온갖 탐욕 다 내버리고 있습니다
어디에 이만한 종교가 있겠습니까
이만한 사상이 있겠습니까
아버지 감사합니다
훨훨 나는 철새들에게도
다 내 고향인 이 가을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듬모듬 마을마다 붉은 고추 널고
그것을 일러 태양초라 합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
곡식 널어
어디 그 길로
함부로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오미자 익고
풋콩 청국장 띄워
저녁 냉갈 자욱이 끼어오를 때
여기에 아들이고자 딸이고자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꾸 사라져가는 마을
여기에 한사코 남아 있는 아름다움이여
들밥 인심 항상 넉넉하고
집집마다 싸운 뒤로도
서로 술과 국수 나눠먹는 정
정이 법보다 높은 곳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의 가을 없이
어찌 내가 있겠습니까
내 자식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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