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어떻게 생기고 소멸하는가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붙이고 상징화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상징화하는 작용,
즉 이름짓고, 상을 짓는 작용이 모든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시발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쉽게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뭉뚱그려 '이런 이름'을
'저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저런 이름'을 붙이고는 있지만
사실 그 이름과 그 상황이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전의 기억이 좋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좋다'는 관념으로 저장되어졌다가
훗날 비슷한 상황을 맞을 때 똑같이 '좋다'고 해석하게되고,
'나쁘다'는 관념으로 저장되어 있던 상황들은 또 다른 상황을 맞을 때
'나쁜 상황'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실수며 오류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오류인지를 모른다.
아니 그것이 옳다고 느끼고 정당한 해석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감정이 옳다고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매 순간 새롭고 신선한 경험들을 접할 때마다
과거의 기억과 감정에 얽매여 아집에 사로잡힌 해석을 가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새롭지 않은 곳이 된다.
매 순간 과거의 연장이자 속박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된 수많은 감정들 가운데
과거의 경험에 빗대어 '좋았던'감정을 '행복'이라 이름 짓고
계속 행복의 감정을 추구하고 집착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욕망'의 생성 과정이며 실체다.
욕망과 집착은 과거의 잔재이며 기억된 감정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과거에 이름 지어놓은 관념이라는 필터로 현실을 걸러내고
거기에 따라 욕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욕망하고, 욕망한 것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행복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는 결코 욕망을 끝낼 수 없다.
욕망이 생겨나게 된 마음의 작용을 전체적으로 사유하고 깨달아
욕망이라는 것이 허망하게 일어나고 끝날것이라는 것을 직시할 때만
욕망은 종식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을 채우겠다거나 없애겠다는 생각 모두 또 다른 욕망일 뿐이다.
욕망을 채우겠다는 것이 중생이라는 상징에 얽매여 있는 것이라면,
욕망을 없애고 초월하겠다는 것은 부처라는 상징에 얽매여 있을 뿐이다.
부처라는 상징도, 중생이라는 상징도 모두 하나의 만들어진 상징이요,
이름일 뿐임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욕망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체적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관찰하되
옳고 그르다는 판단도 없어야 한다.
욕망이 생겨나는 전 과정을 낱낱이 살핌으로써
그것이 허망한 이름 짓기의 결과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매 순간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상을
좋거나 싫다는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자각할 때
욕망의 본래 성품을 바로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난 순간 우리는 과거의 비슷한 상황과 기억을 찾아 갈 것이다.
그리고는 번개처럼 과거에 어떻게 이름 지어 놓았는지를 찾아낸 뒤,
이 상황이 좋은 상황인지 나쁜 상황인지를 판단할 것이다.
좋은 감정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 상황에 집착할 것이고,
나쁜 감정이라고 판단되면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모든 과정을 낱낱이 관조해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거나 애쓸 필요는 없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 된다.
바라보다 보면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보는 습관이
나를 지배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작용을 지켜보면
좋거나 나쁘게 보는 틀이 깨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매 순간 과거의 이름표로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과거가 아닌 현재로써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새롭고 경이로운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욕망이 일어나는 근원적인 작용을 이해함으로써
욕망이라는 과거의 잔재에 속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온전히 보면 매 순간 새롭고 신선한 삶이 내 앞에 펼쳐진다.
욕망을 없애거나 채우려 하지 않은 채
욕망이라는 이름조차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때 내 앞에 펼쳐진 지금 이 순간이
다시금 태초의 텅 빈 고요로 되돌아옴을 느낀다.
본래 아무 일도 없었듯이.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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