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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뽑기 / 문인수

덕 산 2022. 5. 22. 11:47

 

 

 

 

 

풀뽑기 

      - 문인수 -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바랭이 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이른 중반 넘어서면서 치매 앓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 집사람 못 봤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팔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 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 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 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 문인수 “홰치는 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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