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뽑기
- 문인수 -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바랭이 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이른 중반 넘어서면서 치매 앓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 집사람 못 봤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팔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 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 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 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 문인수 “홰치는 산” 중에서 -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 / 피천득 (0) | 2022.05.24 |
---|---|
꽃사과 꽃봉오리 / 한영옥 (0) | 2022.05.23 |
침묵 / 김명인 (0) | 2022.05.20 |
고귀한 자연 / 벤 존슨 (0) | 2022.05.19 |
이름 없는 것들에게 / 주용일 (0) | 2022.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