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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홍 / 노향림

덕 산 2022. 5. 11. 11:25

 

 

 

 

 

영산홍 / 노향림 

노인 요양소

칠 벗겨진 담장 아래

생의 빈자리를 찾아 여인들이

해바라기하며 앉아 있다.

 

붉은 것들만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거짓말처럼 붉은 그림자들을 제 몸 속에서

꺼내어 깔고 앉아 있다.

 

가물가물한 마음의 기억 속에

숙인 목덜미와 파인 가슴 속에

비밀한 사랑 몇장을 지갑처럼 숨겨넣고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그 소리 부드럽게 받아먹다가

벌레 먹은 고사목이 함께 놀고 싶다고

흩어진 옷매무새를 추켜올리는 사이

 

영산홍이 하루해가 길고 지루했다는 듯

다 저녁에 싱싱해진다.

사연 깊은 여인 같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이승의 한컷이여

 

- 노향림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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