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영산홍 / 박주택

덕 산 2022. 4. 24. 11:52

 

 

 

 

 

영산홍

     - 박 주 택 -

 

 

너 잠들었겠구나

네 잠 위에 슬픈 비 내리겠구나

비에 깎여 네 몸 이불 아래로 다리뼈가 보이고

가위 눌리는 꿈결에 베옷 펄럭이겠구나

 

네가 잠들었으니 자야겠구나

내 꿈에도 주름을 베껴 만든 책이 펄럭이는가 몰라

글자들 네 웃음처럼 부서지는가 몰라

 

너 잠들면 네가 흘린 눈물에 들어 펄럭인다

펄럭거리며 네가 구하고 싶은 약을 찾아다니다 밤에 바친다

너의 검은 눈동자와 너의 맹세와 고른 치아들이

새벽을 응시하며 비를 의역하면서 내는 소리에

영산홍 그늘 사이로 꽃잎이 진다

 

네가 울음을 참으며 밥을 먹을 때

네가 넘기려는 밥에 양 볼이 터져나갈 듯 눈물이 생애에 흐를 때

묵울대를 풀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네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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