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 이향숙
바다가 엎드린 허리를 따라 논밭들을 뱉어 내고
더 낮게 웅크리는 전선아래 길을 잃어버려
너울거리는 눈들의 춤
들판이 사라지고 가난한 동네의 지붕들이 파묻히고
낮달같이 천진한 아이들 목소리도 끊겨 길을 잃다
날은 저물고 더욱 거센 눈발
놓아지는 정신을 애써 추스려
지상에 사라진 길들을 되짚으며 빠져 나왔던
그 첫 발령지의 폭설
감감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발갛게 부어오른
찬 손을 말없이 붙잡고 글썽이던 아버지의 눈물
폭설에 담긴 기억 하나가
눈꽃으로 피어
아롱아롱 가슴 한켠에 따듯하게 얼어붙다.
반응형
'이향숙 시인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무나 강에게 / 이향숙 (0) | 2021.03.09 |
---|---|
왜가리 이명 / 이향숙 (0) | 2021.03.05 |
새들의 전서 (0) | 2021.03.02 |
이별 방정식 / 이향숙 (0) | 2021.02.26 |
딱 한 번의 봄날 / 이향숙 (0) | 202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