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시인님 글방

눈꽃 / 이향숙

덕 산 2021. 2. 24. 14:32

 

 

 

 

 

눈꽃 / 이향숙

 

바다가 엎드린 허리를 따라 논밭들을 뱉어 내고

더 낮게 웅크리는 전선아래 길을 잃어버려

너울거리는 눈들의 춤

들판이 사라지고 가난한 동네의 지붕들이 파묻히고

낮달같이 천진한 아이들 목소리도 끊겨 길을 잃다

날은 저물고 더욱 거센 눈발

놓아지는 정신을 애써 추스려

지상에 사라진 길들을 되짚으며 빠져 나왔던

그 첫 발령지의 폭설

감감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발갛게 부어오른

찬 손을 말없이 붙잡고 글썽이던 아버지의 눈물

 

폭설에 담긴 기억 하나가

눈꽃으로 피어

아롱아롱 가슴 한켠에 따듯하게 얼어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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