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시계 째깍 째깍..
김홍우(khw***) 2020-04-15 21:24:46
저는 낮이건 밤이건 어느 때이든지 베개만 베면 바로 잠이 드는 스타일이고 꼭 깨어야 하는 시간까지 숙면을 취하다가
일어날 시간이 되어서도 냉큼 일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졸린 눈으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편인데 어제는 한 밤 중에
잠이 깨었습니다. 왜 깨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깬 김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시 누웠지만 잠이 들기가 쉽지가 않고..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는 웬일인지 그렇게 눈이 말똥하여 있는데 저 만큼 화장대 위에 있는 자명종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째깍째깍 그리고 어쩐지 그러한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오싹한 기분이 들게도 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한 밤중의 어두움이 무서워서일까요? 아이들도 아니고... 낮에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어서 불안한 것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혹 이제는 저도 시간 가는 소리가 두려워지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육신의 신호’이며 ‘마음의 경종’일까요?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휴우.. 하는 한숨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래... 너도 참 오래 째깍거리기를 멈추지 않았구나...”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아니라 지금 내가 나의 두 손을 얹고 있는 ‘배꼽시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흠.. 누가 처음 왜
배꼽시계라는 말을 만들어 말하였던 것일까.. 무슨 뜻과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일까..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먹을 때’를
곧 그 시간을 알려주는 뱃속소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단순설명도 하지만 그건 그냥 우스갯소리 차원인 것 같기도 하고..
혹.. ‘먹는 세월의 속히 지나감’을 일깨워주는 생체시계이며 인생시계라는 말은 아닐까.. 그래서 ‘먹고 산다’는 말도 있는
것이고.. 뭐.. 좀 앞서 나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 어쩐지 그게 맞는 것 같아.. 먹는 시간들의 지남을 알려주는 소리..
쯧, 아무려나 아무튼 내 배꼽시계는 째깍 째깍 쉬지 않고 65년을 돌아가고 있구나. 배가 고프면 알람소리처럼 ‘꼬르륵’
알려주기도 하고 탈이라도 나면 우르륵, 부르륵 구라파전쟁 소리 같은 난리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허허 쯧, 그래
‘구라파전쟁’이라는 말도 얼마 만에 해보는 것인가.. 어렸을 적에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은 소리인데..
세계 1차 대전을 일컫는 소리이니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들의 청년 소년 소녀 때이고..
휴.. 이렇게 또 내려다보니 보잘 것 없이 불룩 튀어 나온 둥그런 배 위에 배꼽도 튀어나와 있는 것 같아 그 마저도
보기 싫구나.. 사람이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이렇게 되는 것일까.. 가슴은 푹 꺼지고 아랫배는 그처럼 불룩 나오고
팔다리는 방아깨비의 그것처럼 되어가지고서는 힘도 없어서는 평지의 걸음걸이도 휘적휘적 하는 것 같고..
아내와 아이들의 눈에도 그런 모습이 안쓰럽게 비추어졌는지 연일 “아빠, 힘내세요.”라고 응원들은 하지만 뭐..
낼 힘이 있어야 내지.. 허허 참..
먹는 게 부실한가.. 운동이 부족한가.. 몸에 이상이 있는가.. 혈압과 혈당의 수치가 약간은 있어서 늘 하루에 한 번씩은
약을 5년 여 복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담당 의사는 늘 ‘염려할 수준이 아니니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하고.. 또 불과 두어 달
전에는 몸이 좀 찌뿌둥하여 거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다 검진 검사를 해보면서 그 비싼 MRI 까지도 찍어 보았건만..
‘이상이라 할 만한 소견은 없습니다.’하는 결과를 통보 받았는데.. 그렇다면 그냥 ‘노쇠함의 과정’인가..
하면서도 어쩐지 그 노(老)는 받기도 싫고 품기도 싫어서 머리를 가로 저어 봅니다.
이제는 나이도 65세나 되었으니 ‘노인’이 된 것은 분명하고.. 그런즉 ‘노년의 삶’을 살아야 함에도 어쩐지 마음만은
그 나이의 절반 쯤 밖에는 안 된 것처럼 육신을 부추기는 바람에 겉으로는 젊은이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고 웃기도 하지만 어디 그런다고 될 일이랴.. 그래서 예전 어르신들이 “나이는 못 속인다..”하시던
말씀이 자꾸만 더 자주 귀에 들려오는 것 같고 그 분들의 나이 드신 얼굴들이 떠오르는데 가만히 생각을 하여보니
거의 모두가 지금 저 보다도 훨씬 젊었을 적의 얼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주로 50대 초중반 정도의 즈음의 나이들 이셨는데 그때 내가 그 어르신들을 많이 ‘늙게’보고 또
‘노인들’ 취급을 하고 또 대접도 하였는가.. 하고 생각을 하여보니 순간처럼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그저 나오는 게
헛웃음이요 긴 한숨뿐입니다. 그 동안 세월이 ‘쏜 살 같이’ 그래요 그야말로 ‘쏘여진 화살’같이 날아가서 ‘65’라는
이름의 표적 판에 힘 있는 것으로 부르르 떠는 모습도 아닌 모양으로 그저 쿡 꽂혔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그 뒤에 있는
‘70’이라는 과녁판을 향하여 여전히 ‘가는 세월’의 활시위를 당기고 있습니다.
“걸을 때도 허리를 꼿꼿이 펴요. 나이든 할아버지처럼 구부정하지 말고..”
근데.. 내가 이미 할아버지 아니던가.. 마누라의 잔소리가 슬슬 늘어가는 것 같은데 그럴 적마다 내가 하는 대꾸의 말 “어이그,
나중에 내 나이 돼 봐라.. 이제 겨우 환갑 되어서는..”(물론 마음속으로만) 쯧쯧, 그래, 이러나 저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하긴,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나이의 고지’에 애써 실어 날라다 주는 세월이 고맙기도 하지..
내가 끙끙거리고 기어 올라가야만 한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이렇게 말해봅니다. “무겁지? 그러니까
70살 고지는 천천히 쉬며 쉬며 올라가자꾸나.. 누가 뭐 크게 재촉하는 것도 아니잖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아무튼 나를 업고 쉼 없이 나아가는 이놈 바로 세월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 째깍째깍 소리가
마치 세월이라는 녀석이 잦게 내딛는 발걸음 소리처럼 들려오기도 합니다.. 그래 가자 갈 때까지 가 보자꾸나.. 마치
시인 이상이 “그래 날자 한 번 더 날아보자꾸나”했던 것처럼 이 세월의 흐름이 마치 나를 안고 어딘가를 향하여서 훨훨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래.. 훨훨.. 훨훨 그 동안에 내 몸에도 마음에도 그렇게 묻은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털어버리며 그렇게 훨훨 날아가 보자꾸나..
이쯤 살아보니까.. 세상의 성년이 되어서일까요.. 뒤 돌아보면 쯧쯧 하게 되는 장면들이 많고 멋지고 잘났던 모습보다는
못나고 찌질 했던 모습들이 더 많이 떠오르면서 그 역시도 쯧쯧 하게 됩니다.. 이제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은
얼 만큼 일까.. 10년, 20년.. 아니 혹 30년을 더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저 ‘생명 연장’의 모양이라면 얼마나 고루하고
진부한 날들의 이어짐이 될까..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을 만들어 놓으셔서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여야 하는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로 내가 분주히 하여야 할
그 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산골어부 2020415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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