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안(未安)과 무안(無顏)의 역사는 쓰지 말아야

덕 산 2020. 4. 20. 12:50










미안(未安)과 무안(無顏)의 역사는 쓰지 말아야

 

김홍우(khw***) 2020-04-18 12:18:14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미안하다또는 무안하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미안은 거북하다는 말이고, 무안은 면목이 없다는

말이며 또 거북은 불편함을, 무안은 창피함을 말하는 것이니 살아가면서 그 두 말은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게 되는 삶이

좋을 것이라 하겠습니다.

 

 

, ‘미안할일을 하지 않고 또 창피당할일이나 모양을 하지 않고 갖지 않으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쯧 그래요..

사람의 사는 것이 어찌 꼭 그럴 수만 있겠는가..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구두를 밟아서 미안합니다.’ 할 때도 있고 자칫

남녀구분 출입문이 헷갈려서 여자 쪽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황급히 돌아 나오며 순간 창피할 때도 있는 것이니..

다들 그러고 사는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주의하여야 할 일 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자연스레 입으로 하지만 무안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지요.

그도 그럴 것이 대개의 미안함은 실수의 차원에서 용납되어지는 것이지만 무안함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함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 상기한 예로 보면 남의 구두를 밟는 것은 자신이 얼른 상황을 알아채고 자기

발걸음을 제어치 못하는 자칫 순간의 실수 행위이기에 조심 하세요라는 나무람에 그치게 되지만 남자가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고 하는 상황에 대하여서는 눈이 없냐’ ‘글도 못 읽냐’ ‘표시구분도 못 하냐하는 비난이 연이어 쏟아지고

받을 수 있고 또 거기에는 뭐라 대꾸를 할 상황이 아닌 것이라고 대중들 사이에 보편 인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똑같이 실수이고 또 조심하지 못하거나 않은일이라고 하여도 그 인정의 폭에서 현저한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미안합니다.’ 하는 사과 한 마디면 더 이상 문제 삼을 일도 아니기에 그 가해자(!)나 피해자(!) 양쪽 모두 그냥 휴!

또는 쯧! 하고 넘어가기는 합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특히 가해자 쪽의 마음에는 오래 오래 남게 되는 영상이 되기도 하지요.

미안(未安)은 한문의 뜻 그대로 아닐 미()자를 써서 이 일로 내가 편하지 않다.”는 감정의 뜻을 전하는 것이고 무안(無顏)

또한 글자 그대로 얼굴이 없다면목(面目)이 없고 체면(體面)이 서지 않는다.’ 라는 말이니 곧 뵙기에 죄스럽고,

대하기에 할 말이 없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고사(故事)에는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친다.”라는 것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 ,

죽을지언정체통(體統)을 내던지지는 않겠다는 것으로서 죽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신분과 지체에 알맞은 모양으로

당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우리 조상들 중에는 그렇게 지체가 높고 양반 신분이신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체통을

내려놓기보다는 죽음이라도 그 쪽을 택하여 스러진 실제의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제강점시에 단발령을 내려 상투를

잘라내는 과정에서도 우리 어르신들 중 숱한 분들이 상투 자르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숱한 고역을 치렀으며 실제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음을 통한의 사실로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보다 좀 더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외국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 보면 어느날 동헌(東軒)에서 한 죄인을 단죄(斷罪)한다

하여 가보았더니 그 죄인이 보는 앞에서 큰 종에 쓰여진 그의 아버지 이름에 두꺼운 붓으로 검은 먹줄을 두 개 쭉 긋고는

그 종이를 불태우는 것이 형벌의 전부이어서 이 선교사는 그것 참 싱겁다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바로 뒤이어 그 죄인은

마을에서 쫓겨났고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죄(!)를 꼭꼭 숨기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을 하였다는 것을 전하면서

서양식으로 하자면 아무 것도 아닌 정죄이고 단죄의 모양이 조선에서는 아비의 이름에 먹칠을 한 자가 되어서 그렇듯

평생을 죄인의 그늘진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절대풍속에 혀를 내두르며 다시 한 번 조선인의 체통과 체면중시 모양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글 말미에 우리 서양 쪽 나라 사람들 같았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어떠한 육체적 체벌도

가하여지지 않음에 대하여서만 기뻐하며 그 같은 솜방망이만도 못한 형벌의 일은 곧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동서양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던 것이지요. 물론 서양이라고 집안이나 가문의 체통과

체면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상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불태우는다소 주술적 모양만으로도 참을 수 없고

참아서는 안 될 그리고 가장 잔인한 멸시(蔑視)적 모욕으로 알고 여기고 받는 조선인들의 체면중시사상을 엉뚱한

모양으로도 확인을 하면서 내심 놀랐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얼굴(고개)을 못 들겠다.” “창피해서 죽고 싶다.” 라는 말들을 하는 모습들이 여전하지요.

체면을 중시하였던 조상들의 얼(!)이랄까 정신이랄까 또 기백(氣魄)이라고도 할까.. 그러한 것이 우리들의 핏 속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집안 망신을 시키면 안 된다

교육들을 받아오고 있으며 그 집안 망신이란 조상들로부터 아버지 어머니에 이르기까지의 이름들을 먹칠곧 더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임을 우리 조선인들 곧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름에 먹칠, 가문에

먹칠, 집안과 사회와 국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 대한민국 사회의 전통적 불문율입니다.

 

 

..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일까요.. 세대가 바뀌어서일까요.. 세대(世代)가 바뀌면 세태(世態) 또한 바뀌는 것이라고는

하겠지만 우리 조선인 대한국민의 피가 어디 서양이나 왜국에 가서 한꺼번에 물갈이를 해 온 것이 아니라면 우리 몸속에

여전히 흐르는 민족고유의 애국정체성의 혈류가 멈추어서도 바뀌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서

말을 맺고 서툰 글을 멈추고자 합니다.

 

 

정치인이라면 정당(政黨) 곧 자당(自黨)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고 대통령과 각료와 공무원들이라면 정부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고 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가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이들이 다 되어서 우리 반만년 역사 중에서도 이 시대를

가장 빛나는 시대와 시절로 남을 현재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미안(未安)과 무안(無顔)의 모양을

통한의 못난 유산으로 남겨주지 맙시다.

 

 

- 산골어부 202018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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