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온고지신.

덕 산 2019. 4. 24. 14:05

 

 

 

 

 

 

 

 

박천복(yor***) 2019-04-22 10:56:47

 

溫故知新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알라는 뜻이다.

어제를 알면 오늘이보이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어제는 오늘의 거울이다.

 

어제를 제대로 모르면 오늘을 왜곡하고 내일을 그르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꼭 그렇다.

나는 1937년생으로 일제하에서 일본소학교를 다녔고 광복과 함께 38선을 넘어

월남했으며 6.25전쟁과 5.16, 5.18을 다 겪었고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나라를

거덜 내고 있는 기가 막힌 세상을 살고 있는 구세대다.

 

그래서 우리세대에게는 다음세대에게 우리의 어제,

과거를 얘기해줄 역사적 책무가 있다.

보통사람들에게 가장 밀접한 것은 일상이다

매일 매일을 살고 있는 현장이 그것이다.

 

그 일상이 변화해온 역사를 알면 오늘을 사는 태도가 지금과는 달라진다.

원인이 밝혀지면 결과다 달라지는 게 그런 이치다.

 

1.쌀밥.

지금은 모두가 언제나 쌀밥을 먹고 있으며 그건 당연한 일이고

심지어는 다이어트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두세대전인 60년대까지는 일 년에 쌀밥은 세 번만 먹을 수 있었다.

, 추석, 그리고 생일날 이었다.

매년 봄이 되면 농사짓는 집에 양식이 떨어졌고 사람들은 굶지 않으려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죽을 쒀서 연명했다.

신문1면에 절량농가(絶糧農家) 와 초근목피(草根木皮) 라는 내용이 매년 실리곤 했다.

보리밥이라도 하루세끼 제대로 먹으면 그건 부잣집이었다.

 

사람들은 박정희가 중공업과 수출에만 매달린 줄 알지만 그는

단군이래의 이 가난을 해결하려고 정말 노심초사했다.

60년대 후반, 서울농대의 허문희 교수를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 에 보내

새 벼 품종인 IR667을 만들게 했으며 수원에서 시험재배를 거친 뒤

1972년부터 이를 농가들에 보급, 1977년에 쌀의 완전자급을 달성했다.

 

 

 

 

 

 

 

그 기적의 벼가 '통일벼' 이며 단보 당 수확량이 재래종에 비해 30%가 많았다.

비로서 모든 국민이 똑같이 365, 하루세끼 쌀밥을 먹은 게 이때부터다.

이게 불과 42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곡물의 자급도는 23%지만 쌀만은 남아돌고 있다.

나는 언제나 박정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통일벼라고 생각한다.

단군이래 우리민족의 굶주림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2.집과 옷.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이 끝난후 피란지에서 집에 돌오와 보니

앞 동네하나가 통째로 없어졌다.

집중포격을 맞은 것이다.

그래도 거기에 얼기설기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는 장작을 땠고, 나중에 무연탄을 썼다.

 

추위와 연탄 개스에 떨어야 했고 , 아침에 눈을 뜨면

자리끼가 얼어있었고 하얀 입김이 눈에 보였다.

방충망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 여름이면 모기에 뜯기면서 열악하게 살았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까지 검은 염색을 한 미군군복을 고쳐 입고 살았으며

추운겨울에도 제대로 된 외투를 입어 본 일이 없다.

신발은 언제나 미군군화를 신고 다녔다.

 

3.학교.

6.25전 중학교는 6년제였다.

중학교도 그때는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갔다.

그나마 전쟁 통에 3년 동안은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도 못했다.

그때 대학은 수능이 아니고 각 학교별로 독자출제로 시험을 치르고 입학했으며

졸업 때는 '국가학사고시' 가 있었다.

합격하면 졸업장을, 불합격이면 수료증을 줬다.

예를 들어 그때 상업은행은 법대졸업생이 선호하는 직장이었다

다른 은행은 없을 때였다.

 

4.교통편.

그 시절엔, 서울에는 전차가 다녔지만 웨만한 도시에는

시외버스는 있었지만 시내버스는 없었다.

한시간정도의 거리는 으례히, 모두가 걸어서 다녔으며

꼭 가야할 곳이라면 아무리 멀어도 걸어서 갔다.

 

 

 

 

 

 

 

 

5.가전.

70년대 우리집의 가전제품은 그때 막 생산을 시작한

플라스틱 케이스의 금성 라디오 하나였다.

그건 정말 우리집의 보물이었다.

그 후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일제의 14인치 중고 흑백 텔리비젼을 샀을 때

우리집은 저녁이면 동네사람들의 안방극장이 됐다.

지금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가전제품들은 그런 게 있는 줄로 모르고 살았다.

 

6.자전거.

50년대 초 우리집엔 엄친이 타시던 일제의 두발자전거가 있었다.

그건 모두가 선망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자전거를 배우느라

무릎이 여러 번 까지기도 했다.

그때는 자전거 있는 집도 아주 드물었다.

자가용이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7.50,70년대의 골목.

아침이면 콩나물, 두부, 어리굴젓과 곤재이젓, 소금,

새우젓 장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고,

낮에는 큰 도기를 어깨에 멘 남자가 '장작 패' 를 외치며 지나갔다.

밤이면 멀리서 '약식이나 찹쌀떡' 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물론 돈이없어 사 먹지는 못했다.

 

8.거지.

80년대 초까지 거지가 있었다.

큰 깡통에는 밥을, 작은 깡통에는 반찬을 담았고,

매일 아침 대문 앞에 나타나 '밥좀 주쇼' 였다.

어떤 때는 밥은 많으니 반찬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때, 거지를 박대하는 집은 없었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았지만 인정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착했다.

지금과 같은 악발이들은 없던 시절이다.

 

9.넝마주이.

10대 아이들이 등에 커다란 광주리 같은 망태를 메고 손에는

긴 집게를 들고 다니면서 지금 우리들이 재활용을 위해 분리 배출하는

물건들을 거기에 주워 담았다.

때로는 남의 집의 널어놓은 빨래를 훔치거나 멀쩡한 진열상품을

주워 담는 일이 있어 시비가 일곤 했었다.

 

 

 

 

 

 

10.과자.

그 시절의 대표적인 과자가 '센베이' 였다.

한쪽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초코렛이 있었다.

조악한 국산과자와 최고수준의 미국제품이 공존하던 시기다.

애들은 미군이 지나가면 따라가면서 '헬로, 추잉검 초코렛' 을 외쳤다.

그래도 보통 집에서 과자를 먹을 수 있는 일은 흔치않았다.

간식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11.변소치기.

그 당시 수세식화장실이 있는 집은 없었다.

재래식변소에는 밑에 큰 통이 있어 그게 다 차면 소가 끄는

우차가 와서 변소를 퍼 내야했다.

인분을 통에 담아 지게로 져서 우차에 있는 큰 통에 옮기기 때문에

한집이 변소를 치면 거의 한 주일 동안 온 동네에 똥냄새가 꽉찼다.

그래도 사정이 서로 같기 때문에 모두가 꾹 참고 살았다.

 

12.인천부두.

부두에 나가면 섬에서 새우젓과 어물, 그리고 장작을 싣고 온 돛단배들이 많았다.

선교 끝에 나가 바다 밑을 내려다보면 기어 다니는 게와 조개가 보일정도로 맑았다.

지금은 그게 똥물이 됐다.

그만큼 못쓰게 된 것이다.

어찌 바닷 물 뿐이겠는가.

요즈음은 청명한 하늘보기도 어렵다.

지금 우리부부는 식당에서 외식하는 경우 밥이 남으면 싸가지고 온다.

식당에서는 그 밥을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쌀 한 톨, 밥풀하나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쌀은 생명이었고 절대적인 양식이었다.

그 쌀을 허비하는 건, 우리세대에게는 죄악이다.

지금 우리는 국민소득, 기대수명, 건강상태를 기준한,

 

2017년도 세계적인 통계지도에서 영국, 독일, 벨기에, 덴마크,

아일랜드와 함께 최상 위 수준에 있다.

세계 최고수준은 일본 한 나라이며 미국도 우리보다 아래다.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단 두세대 사이에 최빈국에서 이렇게 올라선 것이다.

불평하면 안 된다. 하늘이 노할 수 있다.

더 절약하고, 검소하게, 소박하게 살줄 알아야한다.

그래야 지금의 수준을 지킬 수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단연코 '교육' 에 달려있다.

사람이 우리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교조가 애들을 키우면 안 된다.

사람만 제대로 키우면, 그게 일류국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서양격언.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고 살 걱정 없다..   (0) 2019.05.07
'love potion number 9' 노래를 아십니까?  (0) 2019.04.30
냉혹(冷酷)   (0) 2019.03.14
생활의 지혜 ㅡ 대인관계.   (0) 2019.03.04
안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0) 2019.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