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덕 산 2019. 2. 26. 13:36

 

 

 

 

 

 

 

 

 

박천복(yor***) 2019-02-25 10:58:40

 

한 일간지가 의도적으로 사회면에 게재한 사진 한장이 있다.

지난 110일 중구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이 한정판 운동화를 팔게 됐는데

이른 아침부터 이 운동화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민들의 보행로를 완전점령,

통행이 불가능해 졌으며 사람들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있어 줄도 없는 상태였다.

 

백화점 문이 열리면 결사적으로 달려 들어갈 것이며 이때 대형사고가 날수도 있다.

말하자면 수도서울의 한복판에서 이미 또 벌어질 무질서에 대해 이를

고발하는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신문은 바로 전날도 대단히 시사적인 사진 2장을 사회면에 실었었다.

그중 하나는 뛰어난 맛으로 유명한 어떤 순대국 집 앞에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행로를 점령, 시민들이 차도로 내려서서 걸어가야 했으며 기다리는 동안

큰 소리로 떠들어서 옆에 있는 가정집이 피해가 크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 사진 옆에 실린 또 한 장의 사진은,

일본의 도쿄 신주꾸에 있는 유명한 라면집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보행로의 중간이 아닌 한쪽 옆 건물 벽에 일렬로 바짝 붙어서서

스마트폰을 하거나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주변과 보행자들에게는 전혀 방해가 안됐다.

 

두 사진이 보여주는 핵심적인 차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질서의식이며

사회학에서는 이를 '사회적자본' 이라는 학술용어로 쓰고 있다.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서구, 특히 앵글로색슨

계열 국가들에서 형성된 개인의 자유선택과 자기책임원리가 작동하는 사회적 특성을 말한다.

 

보통선거, 인권, 시장경제 등 지금의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모든 제도의 바탕에

해당하는 사회공동체의 합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갈등역시 크게 보면 사회적자본의 축적이 미흡했기 때문이며

정치적 극한대결, 법치의 부재, 패거리문화, 폐쇄적 개인주의 등은 모두

사회적 자본의 부족과 관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회적자본이 충만한 사회는 사회적 신뢰도가 높아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면서

권력과 부의 집중을 방지하는 공정하고 열린사회를 지향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문화된 규칙이상의 자발성이 필요해진다.

자기가 원하는 한정판 물건을 사기위해 유명한 음식점의 음식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다리는 것은 충분히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때 보행로를 무질서하게 막아 보행자가 지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은

사회의 흐름, 물류를 막는 폭력적인 이기심이다.

반대로 담벼락에 일렬로 붙어서서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자발적 행동이다.

이 차이는 한 국가, 사회공동체의 사회적자본의 풍요와 결핍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아무리 봐도 극악스럽기 그지없다.

관용은 잊은 지 오래고 뜨거운 증오를 퍼 부을 준비는 늘 완료상태다.

잘못을 범한 사람을 징계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데 있다.

 

'국민정서' '민중정서' 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기준에 한번 걸려들면 끝장이다.

신체적으로는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혼이 탈탈 털린 산송장상태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의 지극한 정의로움이다.

지난시대의 사악함을 옹호할 생각도 없고 잘못을 범한 사람의 처벌을 비난할 의도도

없지만 혹시나 홀로 선하다는 의식에 취하여 균형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주경철 교수의 글이다.

왜 우리는 모두가 이렇게 극악스러워 졌는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와 배려는 사회적자본의 기초다.

지금 우리에겐 그게 부족해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 한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이제 우리도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밥은 3만불 짜리를 먹고 사는데 생각하는 수준, 사고방식은 5천불수준이다.'

가장 큰 불균형이 그것이며 사회적자본이 크게 부족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압축성장을 하면서 건너뛴 자리가 이제 그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학습이 부족했던 것이다.

 

 

 

 

 

 

여럿이 함께 사는 방법과 기술에 서툴러서 모든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신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함께 지키는 질서가 사실은

모두를 편하게 한다는 공동체 체험이 부족해서다.

가장 중요한 기초교육에 이런 커리큘럼이 없다.

오직 입시를 위한 '시험기술자' 만 양성할 뿐 가장 절실한 인성교육이 없다.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사는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했다.

 

유튜브 채널인 '펜앤마이크' 의 정규재 주필이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36년간 경제기자를 하면서 수많은 유명 내, 외국인들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말미에 반드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무엇이 한 국가의 국부(國富)를 결정하는가.

거의 대부분인 95%'국민성' 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국민성이란 무엇인가.

한 나라의 국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 행동양식, 사고방식, 기질이 그것이다.

가치관은 좋고, 옳고,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개인의 관점이다.

행동양식은 어떤 일에 반응하는 모양세이며,

사고방식은 체계적, 논리적 생각의 틀이고,

기질은 개인이 가지는 특유의 성질이다.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이고, 법보다 주먹이 먼저이며, 생각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있고, 성질이 조급하다면 그 인간은 망할 수 밖에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말 우리는 줄을 설수 없으며 조용 할 수도 없고, 보행로를 비켜설 수 없는 사람들일까.

안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두 가지 모두라고 대답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그게 불편하고 모두의 손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성은 지랄 같은데도 있지만 단 두 세대만에 바닥에서

경제대국이 된 저력도 가지고 있다.

그건 우리에게 그만한 기질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의 실패였다.에드워드 기번.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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